(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상법 개정으로 도입된 사채관리회사가 증권사의 새로운 사업모델이 되느냐를 두고 증권가에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15일부터 본격 시행된 개정 상법에 따라 회사채를 발행하는 기업은 별도의 사채관리회사를 반드시 지정해야 한다.

사채관리 업무를 맡을 수 있는 곳은 증권사와 은행, 한국예탁결제원, 증권금융 등으로 한정된다.

다만, 특정 기업의 회사채를 인수하는 증권사는 해당 회사채의 사채관리 업무를 할 수 없다.

사채관리회사가 도입된 것은 회사채 투자자를 보호하려는 이유에서다.

사채관리회사는 사채의 상환청구와 변제수령, 채권보전 등의 사채 관리와 관련된 전반의 필수 업무를 맡아 처리한다.

채권자들을 대신해 회사채를 발행한 회사가 지급불능 등의 위험을 높이는 행위를 할 때 이를 제한하고 감시하며, 위험성을 투자자들에게 사전에 고지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그간 회사채를 인수하는 증권사가 부수적 업무로서 사채관리회사의 업무를 담당해 왔으나 역할의 중요성이나 이해 상충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차원에서 아예 법규화한 것이다.

◇ 증권사 "돈 될 것 같은데"…너도나도 관심 = 개정 상법을 반영해 금융투자협회도 지난 달 회사채 인수업무규정을 개정하면서 사채관리회사 지정과 관련한 근거 규정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지난 달 15일 이후부터 회사채를 인수하는 증권사들은 해당 회사채의 사채관리 업무를 맡지 않고 있다.

대신 회사채를 발행하는 기업들은 인수단에 포함되지 않은 증권사를 사채관리회사로 지정하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이 AJ렌터카와 동양, 성우하이텍, 코오롱글로벌 등의 사채관리회사로 지정됐고, 동부증권(대성산업가스), 한국투자증권(현대백화점), 한화증권(SK), HMC투자증권(STX), 동양증권(LG실트론) 등도 사채관리 업무를 맡게 됐다.

지난 달 17일부터 회사채 발행 때 수요예측이 의무화되면서 회사채 발행량이 급감한 탓에 아직까지 사채관리 업무를 맡은 증권사가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주요 증권사들이 사채관리 업무에 뛰어든 것은 한국예탁결제원이나 증권금융 등이 아직 준비를 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신규 사업모델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개정 상법 시행 이전에 사채관리 업무는 회사채를 인수하는 증권사가 발행 회사에 제공하는 서비스 차원으로 인식됐던 게 사실이다. 사채관리에 대한 수수료도 받지 않았을 정도다.

사채관리회사 도입에 따라 증권사들은 매우 적은 액수이기는 하지만 발행 회사로부터 일정 수수료를 받게 됐다.

유진투자증권은 4건의 사채관리 업무를 맡으면서 2천만원에 가까운 수수료를 챙겼고, 한화ㆍ동부증권 등도 500만원 이상의 수수료를 받았다.

제도가 시행된지 얼마 안됐고 발행 회사와 증권사가 여전히 '갑을(甲乙)'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수수료 수준은 아직까지 원가에도 못미치고 있다.

그러나 증권사들의 기대는 크다. 제도가 정착되면 발행회사들도 그간 서비스 정도로 생각했던 사채관리 업무를 수수료를 지급해야 하는 당연한 업무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시간이 문제지 정당한 대가를 받는 시기가 반드시 올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장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셈이다.

연합인포맥스 리그테이블에 따르면 지난해 회사채 발행규모는 100조원을 넘어섰다. 은행채를 포함하면 130조원에 육박했다.

회사채 발행이 더욱 늘어난다는 것을 가정할 때 증권사들이 수수료로 챙길 수 있는 금액만도 연간 수십억원에 이를 수 있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대형사 뿐 아니라 중소형 증권사도 사채관리회사에 대한 관심이 크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곳만 5∼6군데 정도 된다. 당장 수익이 안되더라도 시장 확대 추세를 고려할 때 돈되는 장사가 될 것으로 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일본의 경우 사채관리회사는 발행 회사로부터 발행총액의 10bp를 매년 수수료로 받고 있다. 적지 않은 액수다.

미국은 발행규모 5천만달러의 'AAA' 회사채를 기준으로 법무수수료(2천750달러), 가입수수료(5천166달러), 연간 수탁수수료(6천901달러) 등을 부과하고 있다.

◇ 예탁결제원 "증권사 능력되나? 우리가 하는게 맞다" = 최근 증권사들이 잇따라 사채관리회사로 지정되고 있는데 대해 예탁결제원은 내심 못마땅한 기색이다.

아직 사업에 대한 검토와 규정 및 정관 손질 등의 문제가 남아 있어 정식으로 업무를 진행하지 않고 있지만 이해 당사자인 증권사가 사채관리 업무를 하는 게 올바른 방향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예탁결제원은 일단 8월중에 업무를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일정이 다소 늦어질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예탁결제원은 사채관리회사의 강화된 역할과 투자자 보호라는 입법 취지를 감안할 때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공적 기관이 업무를 맡는 게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탁결제원 관계자는 "사채권자의 보호 기능이 강화되면서 사채관리회사가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사채관리 업무를 처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고 말했다.

예탁결제원은 발행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수수료도 원가 수준에 맞추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영리 목적이 아닌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취지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예탁결제원은 사채관리 업무를 하기 위한 인적ㆍ물적 기반을 갖추도록 강제하고 자본금과 조직체계 등도 규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보고 금융당국에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것도 검토중이다.

그러나 증권사들은 예탁결제원의 주장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어 양측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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