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월스트리트는 정글의 세계다. 먹히지 않으려면 먹어야 하는 냉엄한 생존의 법칙이 작동하는 곳이다. 승자는 모든 걸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승자가 되려면 탐욕스러워야 한다. 영화 월스트리트의 주인공 고든 게코는 이런 월가의 분위기를 '탐욕은 좋은 것'이라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월스트리트는 속된 말로 하면 넥타이 매고 도박하는 곳이다. 주식의 미래가치에 투자하고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파생상품에 투자한다는 잘 포장된 논리를 내세우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돈 놓고 돈 먹기'인 경우가 많다.

월가의 트레이더는 실제 생활에서도 도박을 즐긴다. 80년대 월가를 주름잡던 채권하우스 살로먼 브러더스에서는 '라이어스 포커'라는 게임이 유행했다. 지폐의 일련번호를 가지고 내기를 걸어 도박을 하는 게임이다. 딜러들은 사무실 안에서 거리낌 없이 거액을 걸고 라이어스 포커를 즐겼다.

2008년 금융위기의 원흉으로 지목받는 '퀀트(수학과 물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컴퓨터를 이용해 거래하는 전문가)'들은 퇴근하면 맨해튼 호텔의 밀폐된 공간에 모여 밤새도록 포커판을 벌였다. 헬기를 타고 뉴욕 인근 롱아일랜드의 도박장으로 날아가기도 했고 라스베이거스에 가서 블랙잭으로 자신의 승리욕을 시험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와 도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월스트리트가 도박판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한 일들이 최근 잇따르고 있다. JP모건의 파생상품 손실과 페이스북 거품 논란은 탐욕을 앞세워 서로 물고 뜯는 월가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JP모건에 20억달러(2조3천억원)의 손실을 안긴 이른바 '런던 고래'는 무모한 베팅으로 사고를 쳤다. 런던 고래의 무리한 베팅이 실패할 것으로 본 월가의 다른 딜러들은 반대쪽에 거액을 걸었다.

런던 고래의 실패는 JP모건에 천문학적인 손실을 안겼다. 20억달러로 추정됐던 손실은 30억달러로 불어나더니 최대 70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런던 고래와 반대로 베팅한 딜러들은 큰돈을 벌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누가 이기든 상처는 불가피했다. 런던 고래가 이겼으면 대규모 손실을 본 쪽은 JP모건이 아니라 월가의 다른 은행들이었을 것이다.

JP모건이 파생상품 포지션을 청산하지 않으면 이들의 수익은 더욱 늘어난다. JP모건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포지션을 정리하면 손실이 확정되고, 청산하지 않고 우물쭈물 거리면 손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마치 피라니아 떼에 물린 고래와 같은 운명이다.

페이스북 스캔들은 월가의 모든 문제점을 한 곳에 모아놓은 총집합체다. 주관사의 공모가 부풀리기와 비대칭적인 정보 공개, 거래소의 체결 지연과 이 때문에 벌어진 혼란과 무질서, 피해보상을 원하는 각종 소송이 복합적으로 발생했다.

페이스북 상장에 관여한 이해당사자들은 손익이 크게 갈렸다. 주관사인 모건스탠리는 1억7천500만달러의 기업공개(IPO) 수수료를 챙겼고 페북 주가가 급락하자 초과배정옵션 조항을 이용해 1억달러의 가외수입까지 올렸다.

IPO 전 장외에서 페이스북 주식을 사놨던 골드만삭스도 조용히 이익을 챙겼다. 정보에서 배제된 다른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보면서 '봉'이 됐다.

페이스북의 시장조성자(마켓메이커)를 맡은 씨티그룹과 UBS, 시타델, 나이트 캐피털 그룹은 총 1억1천500만달러(한화 1천300억원)의 손실을 봤다. 나스닥 시스템 오류로 11시에 상장될 예정이었던 페북의 상장이 지연되고 주문이 꼬이면서 막대한 손실을 떠안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미래로 추앙받던 페이스북은 월가에 입성하면서 각종 소송에 휘말리는 등 사기꾼 집단 취급을 받는 이미지로 전락했다. 8억 제국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마크 저커버그는 영웅에서 역적으로 추락할 위기에 놓였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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