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오진우 이재헌 기자 = 새누리당이 총선 공약으로 한국판 양적완화(QE)를 들고 나오면서 한국은행이 당혹스러운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은은 기준금리가 제로가 아닌 상황에서 QE는 통화량 증가 효과가 없는 만큼 우리나라 상황에 맞지 않는 정책이라는 점을강조하는등 조기 진화에 주력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들도 29일 현행 한은법상으로 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닌 경우도 있다고 말하면서도 익명을 요구하는 등 조심스럽게입장을 밝혔다.

◇새누리당 느닷없는 '양적완화' 공약…정부와도 이견

새누리당은 이날 4.13총선 공약을 발표하면서 '성장률 3% 이상이 유지될 수 있도록 거시경제정책 운용'을 들고 나오면서 "한은에 보다 과감한 금융정책을 주문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한은이 산업은행이 발행한 산업금융채권(산금채)을 인수하는 방안과 주택담보대출증권(MBS)을 직접 인수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한은이 이른바 '한국판 QE'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다.

새누리당은 "우리도 이제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정책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시중자금이 막혀 있는 곳에 통화가 공급될 수 있도록 통화정책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이 통화정책을 총선 공약으로 들고 나온 데 대해 정부도 이견이 나왔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강봉균 공동선대 위원장의 개인 소신일 것이며, 당 자체의 선거 공약이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한은도 당혹…시장은 완화정책 기대

한은도 집권 여당이 통화정책을 선거 공약으로 들고 나오면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한은 관계자는 "MBS가 공개시장조작 대상에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직매입은 안 되는 등 한은법상으로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며 "발권력 동원 논란도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은법에 긴급 유동성이 필요할 때 영리기업에 대출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만, 말 그대로 위기 상황일 때만 해당한다"며 "영리기업에 자금을 대준다고 해도 그건 비은행금융기관 등에 한정되고 정말 신중하게 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제로금리가 아닌 상태 채권 직매입 등으로 유동성이 확대되면 단기 시중금리가 하락 압력을 받고 기준금리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통화안정채권 발행으로 재차 유동성을 흡수해야 하기 때문에 통화량이 증대되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그동안 QE 도입 주장이 제기될 때마다 한은이 내세운 방어 논리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우리는 기축통화국이 아니어서 제로금리로 갈 수 없다"고 하는 등 선진국의 QE 정책을 우리가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한은 내에서는 또 정치권이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통화정책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은 모습이다.

한은의 우려와 달리 시장에서는 벌써 정치권발 통화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되는 양상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 뜻밖의 정치권 선거공약이라는 측면에서 당장 실현 가능성을 논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선진국을 중심으로 QE와 함께 마이너스 금리정책이 추진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한국판 QE 실시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집권당의 주요 총선 공약이라는 측면에서 무시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라며 "성장률 전망치가 하향 수정될 가능성이 크고 신임 금통위원들의 성향 등을 고려할 때 정책기조와 관련된 논란이 가열될 여지가 커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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