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1997년 1월 23일. 한보그룹의 부도일이다. 6개월 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불린 동남아 외환위기가 터졌다.

195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 국가부도 사태는 면했지만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돌이켜보면 한보 부도는 대재앙의 예고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위기를 겪고난 뒤에야 그 위기를 예고하는 시그널이 있었음을 안다. 일어날 것 같지 않지만 한번 일어나면 파장이 엄청난 `블랙스완(Black Swan)'의 대표적 사례다. IMF 사태 이전 기록들을 복기해보면 대기업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고, 과잉 투자로 현금흐름에 이상 징후가 있었다. 기업의 차입경영으로 부채 비율이 증가해 30대 기업의 부채비율이 무려 400%에 달했다.

요즘에도 마찬가지다. 현대상선과 대우조선의 부실화를 보면 사전에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는 평가는 뒤늦은 반성일 뿐이다.

국내 100대 기업의 부채는 2012년 506조원에서 2015년 3분기말 551조원으로 크게 늘었다. 외환위기 직후 떨어지기 시작한 민간기업 부채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글로벌 디플레이션과 산업 구조조정이 맞물리면서 심상치 않은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금융권도 과도한 부채를 안고 있는 대기업의 자금사정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고, 현금흐름이 지속적으로 악화되면 대기업이라도 부도위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미래 수익을 위해 부채를 일으켜서라도 투자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단 부채를 동원해 인수합병(M&A)를 해야 하고, 신사업에 대한 투자도 병행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현금 동원력이 약한 기업일수록 부실화의 위험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지난 주말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에 따르면 대기업집단 중 자산순위별로 나눈 상위집단(1~4위)과 중위집단(5~10위), 하위집단(11~30위)간 자산 격차가 점점 확대되고 있고, 부채비율도 중하위권은 상위권과 격차가 더 벌어지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30대 집단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2012년 97.9%에서 2016년 77.9%까지 감소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최상위 집단기업의 부채 개선에 기인한 것이지 중하위권과 대기업 이하군의 건전성은 악화되고 있다고 봐야한다.

기업부채가 늘어나는 작금의 사태가 또 하나의 `블랙스완'을 예고하는 것은 아닌지 당국과 기업 스스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산업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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