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장용욱 기자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2010년 12월 초 '자랑스런 삼성인상' 시상식에 참석한 자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의 역할에 대해 "(활동) 폭은 넓어지겠죠"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올 초, 이 회장은 또다시 '자녀들의 역할을 언제쯤 늘릴 것이냐'는 질문에 "지금 열심히들 공부하고 있는데 하는 것 보고 해야죠"라고 말했다.

결국, 이 회장은 삼성의 후계자가 되려면 그에 걸맞은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는 것이다. 삼성의 차세대 오너에 대해서는 국내외 주주와 거래처의 관심이 많은 만큼, 이들에게 최대한 안정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동안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던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도 선친의 이런 의중을 읽고 최근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병철 선대 회장으로부터 삼성을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와 '휴대전화'로 후계자로서의 능력을 입증했듯이, 이 사장도 '자동차 전장 부품'을 삼성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드는 데 앞장선 것이다.

◇ 이재용, 20여 년 만에 경영전면..'전장부품' 승부수 = 이재용 사장은 국내의 다른 재벌 3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유학을 마친 이 사장은 지난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10여 년이 지난 2003년에서야 경영기획팀 상무로 발탁됐다. 이후 2007년 전무, 2009년 최고운영책임자(COO)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2010년 말 사장에 올랐다.

이 사장은 삼성전자 임원이 되고 나서도 특정 사업을 직접 이끌기보다는 주로 CCO(최고고객책임자)나 COO(최고운영책임자)를 역임하며 경영 지원 업무에 치중했다.

이런 형태의 후계수업은 경영 전반을 두루 챙기면서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주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아 사업 리스크에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영능력을 증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 사장의 경영활동이 좀 더 적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동차 부품(전장 부품) 사업을 직접 챙기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이 사장은 작년 10월에는 GM의 댄 에커슨 CEO를 만났고, 올해 1월과 2월에는 각각 아키요 도요타 사장과 노르베르트 BMW 회장과도 회동했다. 또, 지난달에는 피아트-크라이슬러 지주회사인 EXOR의 사외이사로 선임된 데 이어 폴크스바겐의 마틴 빈터콘(Martin Winterkorn) 회장도 만났고, 오는 하반기에는 포드의 CEO인 알란 뮬러리(Alan Mulally)와도 회동할 계획이다.

삼성그룹의 고위 관계자는 "이재용 사장은 자동차용 배터리와 반도체, 유기EL(OLED) 등 차세대 전장부품에 특별한 관심이 있다"며 "이에 따라 유럽과 미국, 중국을 중심으로 자동차 업계에 대해 직접 마케팅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이 사장이 자동차 부품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성장성이 좋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컨설팅사인 맥킨지에 따르면 지난 2004년 1천200억달러(약 138조원)이던 전장부품 시장규모가 오는 2015년에는 2천억달러(약 230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삼성의 반도체 사업과 연관성이 높은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 시장규모가 지난 2010년 179억달러(20조2천억원)에서 2015년에는 295억달러(34조원), 2020년 400억달러(45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하이브리드나 전기차, 수소연료차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차랑용 2차전지 사업도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재용 사장으로서도 성장성이 좋은 전장부품 사업을 잘 키우면 본인의 경영능력도 대내외에 입증할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동차용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2차전지, 스마트 가전 등은 삼성의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높다"며 "따라서 삼성이 초기 시장안착에만 성공하면 차세대 경영자로서의 이재용 사장의 입지도 더욱 탄탄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만만찮은 경쟁..'미래경영 능력' 진정한 시험대 = 그러나 미래 먹거리인 '전장부품'을 둘러싼 글로벌 기업들 간 경쟁은 벌써 만만치 않다.

국내에서 삼성그룹에 이어 재계 순위 2위를 기록 중인 현대자동차그룹도 최근 전장부품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현대오트론을 출범시키고, 정의선 부회장 주도로 공격적인 인력 스카우트에 나서면서 삼성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또, 스마트폰을 놓고 삼성과 치열하게 경쟁 중인 애플도 팀 쿡이 최고경영자로 부임 이후 자동차 관련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 때 GM의 차기 CEO 물망에 오르기도 했던 팀 쿡은 애플의 CEO가 되자마자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모터스와 파트너십을 추진했다. 올해 들어서는 자동차 설계분야 전문 엔지니어를 모집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이탈리아의 명품 자동차 회사인 페라리의 루카 디 몬테제몰로 회장을 만나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이런 행보를 두고 타임(TIME)지 등 외신은 "애플이 자체 콘텐츠 등을 활용해 자동차 산업 분야에서도 3~5년 내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예상하고 나섰다. 특히 애플의 IT 기술을 앞세워 자동차의 각종 편의장치와 관련된 인포테인먼트(Infortainment)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문제는 삼성 역시 자동차 제어 등 핵심 기능과 관련된 사업에 대해서는 경험이 없는데다, 차량 안전과 직결된 부분이라 장기적인 준비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러 전장부품 중 인포테인먼트를 먼저 공략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인포테인먼트 부문에서 삼성과 애플의 맞대결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외에도 LG는 수년 전부터 LG전자와 LG이노텍, LG화학 등을 통해 자동차 배터리와 모터 등의 개발에 뛰어들었고, 자회사인 V-ENS를 설립해 자동차 설계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또, 최근 SK로 인수된 SK하이닉스 역시 차량용 반도체 사업을 차세대 사업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증권사의 한 연구원은 "자동차 반도체 부문에서 삼성의 점유율이 2%에 그칠 정도로 전장부품 사업에서는 삼성의 존재감이 아직 미미하다"며 "따라서 기술개발뿐만 아니라 마케팅 부분에서 삼성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전장부품이 삼성의 기존 사업과 연관성이 높기는 하지만 삼성으로서는 새로운 분야인 만큼 진입 장벽은 상당할 것"이라며 "따라서 이재용 사장은 자동차 사업을 통해 '관리능력 이상의 경영능력'을 본격적으로 검증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yu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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