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전 국민의 노후를 책임진 국민연금기금 운용방안이 정치쟁점화되고 있다. 임대주택과 보육지원 시설 건립 등 저출산 및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되는 방안이 검토되면서다. 일각에선 노후를 위한 쌈짓돈을 고갈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금융전문가들은 정부의 지급보증 등이 전제된 채권을 통해 구조화 과정을 거치면 국민연금이 오히려 반겨야할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산 부채 매칭 없는 연금 운용은 모래성

보험과 비슷한 구조인 연기금은 자산부채종합관리(ALM: Asset and Liability Management) 기법으로 운용하는 게 제1의 투자원칙이다. 수익률보다 자산과 부채의 가중평균만기(듀레이션:duration)를 적정수준에서 맞추는 게 ALM 투자기법의 기본 개념이다. 듀레이션은 채권투자액의 현재가치 1원이 상환되는 데 소요되는 평균기간을 말한다. 채권 만기가 길어지면 그만큼 길어진다. 자산과 부채의 듀레이션을 적정수준에서 맞춰(매칭:matching) 이자율이나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는 투자기법이다. 자산과 부채의 듀레이션이 불일치하면 그만큼 기금운용 위험이 높아진다. 1990년대 일본 생명보험사들이 줄도산한 것도 ALM 투자 원칙을 외면한 상태에서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된 탓이다.

자산규모 500조원 시대를 맞은 국민연금도 ALM 관점에서 보면 모래성같다. 1천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점쳐지는 부채 듀레이션은 평균 30년인 반면 자산듀레이션은 아직 5년이 되지 않아서다. 가입자에 줘야할 연금은 국민연금 입장에서 부채에 해당한다. 100세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부채 듀레이션은 더 가파른 속도로 증가할 것이다. 연금 지급의 재원인 자산은 장기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안전자산인 국채는 올해 최대 110조원 규모로 발행될 예정인데 초장기물인 20년물이나 30년물 비중은 15% 수준이다. 전체 장기물을 국민연금이 몽땅 편입해도 자산과 부채의 듀레이션 미스매칭을 해소하는 데 중과부족이다. ALM 관점으로 보면 국민연금은 1990년대에 줄도산한 일본의 생보사와 닮은꼴이다.



◇연 3%에 30년물 정부보증채…이자절반은 수익자 부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착화된 저금리 현상은 국민연금의 또 다른 리스크다. 지난주말 기준 국채20년물 수익률은 연 1.8% 수준이다. 국민연금의 베테랑 운용역들이 전력투구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연 3%대 수익률을 올리기도 힘든 것도 저금리 탓이다. 앞으로는 이마저도 기대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 유로존과 일본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제로금리를 도입하고 있는 데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도 조만간 기준금리를 한 두차례 추가 인하할 것이 확실시 된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국민연금의 운용수익률 하락은 불가피하다.

금융전문가들은 저출산 대책 등으로 국민연금이 동원돼야 한다면 운용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구조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 외환위기 당시 발행된 예금보험공사채 형태의 정부보증채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예보채는 정부가 원리금 지급을 보증하면서 금리는 상대적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채권 운용 전문가들은 정부가 연 3% 정도의 이자지급을 보장하는 만기 30년물 채권을 발행하고 국민연금이 인수하도록 구조화하면 윈-윈 게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채권 발행에 따라 발생하는 이자 비용 가운데 절반은 임대주택이나 보육시설 이용자 몫인 수익자부담 원칙도 제시됐다. 정부가 이자비용 부담을 그만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좀 더 정밀한 구조화 과정을 거치면 국민연금과 가입자인 국민 그리고 정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대안이 다양하게 마련될 수 있다. 정치권과 정부 당국자들도 국민연금기금의 ALM과 채권 운용을 좀 더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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