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창헌 기자 = 6월 금융통화위원회가 8일 정례회의에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를 12개월 연속으로 동결한 것은 선제적인 금리정책에 대한 부작용을 걱정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당장 금리를 내리기도, 올리기도 어려운 정책적 딜레마가 지속돼 금리동결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대내외 경기 전망은 어두운 편이다. 유로존 재정위기 리스크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전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 경제에 대한 전망도 크게 엇갈린다. 중국 경제는 경착륙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국내 경기지표도 오락가락 방향성이 분명하지 않다.

중국은 경기 둔화 우려를 반영해 3년 반 만에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했다. 미국과 유럽의 경기부양책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그러나 추가 양적완화 가능성을 시사하지는 않았다.

중국까지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등 경기에 대한 우려를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서울 채권시장의 금리인하기대도커졌지만, 통화당국 입장에선 선뜻 내밀기 어려운 카드다. 유로존 사태가 정치 문제화되면서 그 파장이나 방향성을 예단하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6월 중순의 그리스 선거 결과와 미국과 유럽의 정책 공조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공감대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상은 더더욱 고려하기 어렵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여전히 높지만, 눈에 보이는 물가지표는 하향 안정화돼 당장 금리인상의 유인책은 없다.

경기 하방위험이 급격하게 커지거나 물가불안이 확산하는 등 명확한 시그널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금통위가 현재의 기준금리에 변화를 주기가 어려울 전망이다.



▲어두워진 대내외 경기 전망 = 유로존 재정위기 문제가 재차 불거지면서 세계 경제 전망이 암울해지고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지난 4일 간부회의에서 "유럽 재정위기가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제적 충격을 미칠 것"이라며 위기대비 태세 강화를 당부하기도 했다.

그리스는 채무불이행(디폴트) 또는 유로존 탈퇴의 기로에 서 있다. 오는 17일로 예정된 2차 총선에서 긴축 반대론자들이 다수당을 차지할 경우 유로존 탈퇴에 따른 디레버리징이 본격화될 수 있다.

그리스에서 불붙은 유로존 위기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다른 유로존 선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스페인은 구제금융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유로존 경기는 침체 양상이 뚜렷하다. 유로존이 5월 제조업 PMI는 3년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미국의 제조업 관련 지표는 대체로 견조한 편이지만, 고용 회복에 대한 확신이 없다. 5월 비농업부문 고용은 6만9천명 증가에 그쳤다. 월가의 예측치인 15만5천명 증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결과로, 고용쇼크를 가져왔다.

중국 경제는 경착륙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의 5월 제조업 PMI는 50.4를 기록해 직전월의 53.3에서 큰 폭으로 떨어졌다. 중국의 기습적인 기준금리 인하도 이런 경제지표를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국내 경기지표도 좋지 않다.

4월 산업생산은 전월대비 보합을 나타냈다. 3월의 일시적인 마이너스에서는 벗어나는 모습이었지만, 회복세는 미미했다. 전년 동월비로는 0.5% 상승해 3월에 비해 0.1%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경기선행지수도 전월과 동일한 수준에 머물렀다.

국내외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시장에서는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강하게 일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연일 급락하면서 기준금리와 역전을 눈앞에 두기도 했다.

금통위는 그러나 기준금리 인하는 시기상조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금리인하 카드를 아껴둬야 한다는 심리가 작용했을 수 있다.

▲물가지표 안정에도 인플레 경계심리 = 소비자물가지수 등 물가지표는 하향 안정화되는 추세다. 금통위가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그렇다고 금리를 인하할 수도 없다. 다소나마 안정을 찾은 물가지표가 다시 튀어오를 여지가 있는 데다 1천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 문제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2.5% 상승했다. 2010년 7월(2.5%)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던 지난 4월 지수와 같은 수준이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월과 2월 3.4%, 3.1%를 기록하고서 3월(2.6%), 4월(2.5%)에 이어 3개월 연속으로 2%대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지표와 체감물가 간 차이가 여전히 크다는 게 문제다.

일반 소비자들의 향후 1년간 기대인플레이션율은 5월에 3.7%로 조사됐다. 지난해 2월 3.7%를 기록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한은의 중기적 목표 중심선인 3.0%를 크게 웃돌고 있다.

정부의 물가안정 의지도 지속되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개월 연속 2%대를 기록하는 등 안정되고 있지만, 이제 안심해도 된다는 분위기가 확산해서는 안 된다"며 "범정부적인 물가 안정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금리정상화 기조 유지될까 = 대내외 경기에 대한 엇갈린 시각과 인플레 우려가 충돌해 통화당국이 그동안 강조했던 금리 정상화 작업은 지연되고 있다.

최근 기준금리 인하 압박이 커지고 있지만, 금통위가 기존의 금리정상화 기조를 철회할 가능성도 크지는 않다. 금통위는 국내외 경기 하방 위험에 대한 우려를 강조하면서도 기존의 성장 경로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판단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 안정이라는 1순위 목표를 위해서도 금리정상화 작업을 포기하기 어렵다.

지난 4월 금통위 의사록에서는 "정부가 가격통제와 공공요금 인상 억제, 유통구조 개선 등 미시대책을 통해 물가안정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데 비해 한은은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안정 의지를 시장과 일반국민에 확실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당분간 통화당국의 금리정책 운용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 같은 이유로 올해 금통위에서는 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 외에 새로운 정책수단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도 금통위의 기준금리 동결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금통위가 불안한 대외경기 여건 속에서 금리정책에 대한 관망세를 이어갈 것이란 관측이다.

그러나 하반기 중 1~2차례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나 디폴트가 현실화되거나 스페인의 구제금융이 무산되는 등 유로존 문제가 구체화되면 경기 하방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란 논리다.

금통위가 금리정상화 기조를 고수하고 있지만, 하반기에 금리가 인상될 것으로 보는 참가자들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c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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