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 '네 이웃의 계좌를 조심하라.'

한동안 여의도를 들썩이게 했던 검찰의 차명계좌 색출 방식이다.

배우자, 미성년 자녀의 증권 계좌가 있다면, 회사 준법감시부서에 신고하고 주식을 매매하면 그만이다.

문제가 되는 건 '내 지인의 가족' 계좌다.

이미 듣는 순간 복잡하다. 내 가족도 아니라 '내가 아는 사람의 가족 명의로 된, 내가 거래하는 증권 계좌'라니 말이다.

검찰과 법조계에 따르면 이렇다.

특히 바이 사이드(buy side) 매니저 일부에게서 보이는 방식이다.

자기 가족 계좌로는 차명 거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과 거래하는 법인영업 브로커를 꼬드긴다.

'너랑만 거래할게. 네 가족 명의로 계좌 하나만 열자.'

매니저가 자기 펀드에 담은 주식을 거래하고 싶을 때 이런 일이 생긴다.

브로커 입장에선 자기 명의도 아니고 가족 명의로 하고, 준법감시부서에 매매 내역을 적절히 신고만 하면 되니 매니저의 이런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

매니저는 브로커 가족 명의의 공인인증서를 자기 휴대 전화에 다운로드 받는다.

홈트레이딩서비스(HTS)로 매매 주문을 내려면 공인인증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검찰이 증권 범죄를 조사할 때 법인영업 브로커를 먼저 조사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숙련된 협박과 회유에 브로커는 자신과 거래하는 매니저가 누군지 말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 말을 하지 않아도 휴대 전화 메신저 리스트만 확인하면 된다.

메신저 대화에 직접적인 미공개정보나 범죄와 관련된 내용이 없더라도, 수상쩍은 냄새가 나는 인물 몇 명으로 수사망을 좁힌다.

휴대 전화에 깔린 공인인증서 때문에 매니저는 덜미를 잡힌다.

타인 명의의 공인인증서가 휴대 전화에 있을 이유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거래가 없었다고 발뺌을 하더라도 일단 전산 기록에 남아있고 증권사 측에서 제공하지 않는다면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에 전화번호만 넘겨 조사하면 된다. 번호가 일종의 IP처럼 작동, 거래소 서버에 HTS를 통한 매매 내역을 기록해놓는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A 대학교 컴플라이언스 전문 교수는 "최근 증권 범죄 수사에 검찰이 박차를 가하면서 가장 먼저 수사하는 대상이 증권사 브로커다"며 "차명계좌 거래 수법이 날로 고도화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종사자가 모두 그렇다는 건 아니다. 몇 몇 미꾸라지 얘기다.

(산업증권부 김경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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