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은행권에 경기민감업종에 대한 여신 회수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은행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달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조선사들에 대한 여신을 조이지 말라고 당부한 데 이어 금융위원장까지 나서면서 은행들과 금융당국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9일 금융감독원 연수원 회의장에서 은행장 간담회를 열고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은행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이날 임 위원장은 조선·해운 등 경기민감업종 기업과 협력업체에 대한 시중은행들의 경쟁적인 여신 회수 움직임을 지적했다. 경쟁적인 여신 회수가 확산될 경우, 정상기업도 안정적 경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임 위원장은 경기민감 업종이라도 정상화 가능한 기업에 대해서는 옥석가리기를 통해 채권단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통해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 문제만 해결된다면, 앞으로 경영 정상화에 큰 무리가 없는 기업들이 많은 만큼, 이들에 대한 여신 회수를 자제하라는 요청이다.

이날 임 위원장은 "채권은행들은 해당 기업의 중장기 전망을 면밀히 점검해 여신을 운영하고, 해당 업종의 중소 기자재 업체 및 협력업체에 대해서도 각별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은행들은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진웅섭 금감원장의 연이은 요청에 대해 사실상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에 대한 대출만기 연장과 선수금 환급보증(RG) 처리를 부탁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간 은행들은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조선·해운업 등 경기민감업종에 대한 여신을 꾸준히 축소해왔다.

특히 정부가 지난 4월 말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대형 조선 3사에 대한 대규모 자구계획을 제출하라고 주문하면서, 은행들은 이들에 대한 신규 여신 지급을 사실상 중단했다. 조선사의 자구계획과 실사 결과가 발표됐지만, 신규 여신을 추가로 지급할 수 있을 정도의 안정성이 확보됐다는 판단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은행들은 주요 조선사에 대한 단기 차입금의 만기를 기존 1년에서 3개월로 축소하는 추세다.

지난달 산업은행으로부터 자구계획안을 승인받은 삼성중공업은 각 채권은행에 1년 만기의 단기 차입금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산업은행, 농협은행 등은 대출 만기를 3개월로 줄였다.

현대중공업 역시 내달 말까지 10척의 선박 수주 계약을 앞두고 있지만, 은행들은 신규 RG 공급을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은행들은 아직까지 조선·해운업에 대한 신규자금 추가 공급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은 "연이은 금융당국의 요청을 무시할 순 없지만, 상황이 예전처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며 "대기업 계열사인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단순히 망하지 않을 것이란 관점이 아니라 조선·해운업 자체에 대한 행내 평가 기준에 미달할 경우 특정 기업만 혜택을 주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은 "금융당국이 사실상 은행에 대출 연장이나 RG 발급을 요청한 것과 다름없어 솔직히 부담스럽다"며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과 RG발급은 앞으로도 해당 기업의 경영 상황이 나아지는 정도, 다른 은행들의 움직임 등을 봐 가며 결정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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