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최환웅 기자 = 위기감을 느낀 기업들이 미리 유동성 확보에 나서면서 은행채를 제외한 채권 인수시장이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했다.

4일 연합인포맥스 리그테이블 채권인수 실적(화면번호 8450번)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IB들이 인수한 채권(은행채 제외)은 모두 100조9천418억원으로 2010년보다 17조6천761억원(21.23%) 증가했다.

분야별로는 지난해 59조5천891억원의 인수 실적을 기록한 일반 회사채 부문의 증가 금액 16조7천197억원이 전체 증가분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카드채와 캐피탈 할부금융 인수 규모는 각각 5천146억원, 5천600억원 줄어들었고 ABS 인수와 기타금융 부문은 1조7천508억원, 2천801억원씩 증가했다. 은행채 인수 규모는 2조5천700억원 증가해 전체 채권 인수 규모는 129조918억원으로 1년 동안 18.6% 성장했다.

회사채 인수 규모가 급증한 것은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금융시장 환경이 불안한 상황에서 자금을 미리 마련해 두겠다는 기업들의 전략과, 저금리 기조와 회사채 수요 증가로 우호적인 발행여건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증권사의 한 크레디트 애널리스트는 "10대 대기업 그룹 계열사들은 신용등급이 비교적 양호하고 시장의 수요도 있어 발행이 비교적 원활한 편"이라며 "금융시장의 상황이 나빠지기 전에 미리 자금을 조달하려는 수요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회사채 발행이 집중된 곳은 LG와 SK 등 대기업 계열사들로 나타났다.

지난해 4조원이 넘는 채권을 발행한 그룹은 LG(4조1천758억원)와 SK(4조107억원) 등 2곳, 3조원 이상을 발행한 곳은 현대자동차와 한국전력공사, 포스코 등 3곳으로 집계됐다. 채권발행규모가 2조원대와 1조원대에 달하는 곳은 각각 5곳으로 집계됐다.

2010년 4조원대의 회사채를 찍은 그룹이 전무하고 3조원 이상의 채권을 발행한 곳이 SK그룹(3조8천89억원) 하나에 불과한 것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이러한 추세는 올해에도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유럽 재정위기의 여파 등으로 유동성을 미리 확보해놓겠다는 경영전략을 올해에도 이어갈 기업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은 신년사를 통해 "세계경제가 글로벌 경기둔화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리 그룹과 같은 내수관련 기업들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캐시 플로우(Cash flow) 중심의 경영체제로 유동성 리스크에 대한 관리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SK건설 역시 "올해가 가장 어렵고 힘들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리스크 관리 강화를 경영방침의 하나로 제시하는 등 올해 대기업 CEO들의 신년사에는 '위기'가 공통된 화두였다.

김대영 우리투자증권 DCM그룹장은 이와 관련해 "유럽 재정위기가 진행되는 방향에 따라 자금조달이 용이해 질 것이라고 기업들이 전망하면 미리 마련한 자금으로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를 상환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추가로 회사채를 발행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2008년~2009년 금융위기 당시 급증했던 회사채 발행물량을 차환하기 위한 회사채 발행 규모도 적지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채권시장의 한 딜러는 "올해 초까지는 금융위기 때 찍어낸 3년물 회사채의 만기가 돌아오는 물량이 많아 차환용 회사채 발행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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