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으로 수년간 갈등을 빚어온 공정거래위원회와 은행권이 이번엔 대출 약관상 기한이익상실 조항의 해석 여부를 둘러싸고 다시 맞붙었다.

공정위는 대출 기한이익상실 약관 조항이 채무자의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고 보는 반면에 은행들은 채권자의 채권 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방어 조치라고 맞서고 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공정위는 이달 29일 은행의 여신거래 기본약관 개정과 관련한 약관심사자문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공정위는 작년 말 은행의 여신거래 기본약관 가운데 '가압류에 따른 기한이익 상실' 조항에 대해 시정할 것을 은행들에 전달했다.

기한이익 상실은 은행 등의 금융회사가 채무자의 신용위험이 커질 경우 대출금을 만기 전에 회수하는 것을 뜻한다. 은행들은 채무자가 약정된 기한 내에 채무나 이자를 갚지 못할 경우 기한이익상실을 통보하고, 채권에 대한 회수 절차에 착수한다. 이 과정에서 가압류 등을 통해 채무자의 자산을 동결, 보전하는 동시에 회수 절차에 들어간다.

공정위가 문제를 삼는 것은 기한이익상실 권한이 대출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약관에 따라 채권에 대한 조기 회수에 나설 경우 기업 또는 개인 등의 채무자의 자금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어 대출 소비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은행들이 기한이익상실을 통보한 이후 채무자의 자산에 대한 가압류를 진행하는 시점도 부당하다는 논리를 대고 있다.

은행들은 통상 기한이익상실 시점을 기준으로 대출 회수를 위해 채무자의 자산에 대한 회수에 들어가는데 이럴 경우 다른 채권자들의 채권 회수를 방해해 채권자 간 불평등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따라 공정위는 기한이익상실 시점을 가압류가 아닌 본압류 시점으로 둬 6개월 안팎으로 시기를 늦추는 쪽으로 약관을 개정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은행들은 반발하고 있다. 기한이익상실 조항을 약관에 두고 있는 것은 채권 회수를 원활하게 해 은행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과 독일 등 다른 선진국에서도 기한이익상실 조항을 은행의 고유한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 채권 회수 시점을 가압류가 아닌 본압류로 늦추면 대출시 리스크가 커지는 것을 감안해 금리를 반영해야 하며, 이는 결국 대출 소비자의 불이익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악성 채무자로 인해 이자와 원금을 꼬박꼬박 내는 성실한 채무자들이 오히려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가운데 공정위는 지난 4월 은행들에 공문을 보내 여신거래 기본약관에 대한 개선권고 지침을 공식화했다. 통상 여신약관 개정에 대한 심사 청구 권고는 넉 달 안에 이행돼야 한다.

은행들은 이달 초 공정위가 지적한 기한이익상실 관련 조항을 뺀 의견을 공정위에 전달했다. 사실상 기한이익상실과 관련한 내용을 이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인 셈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다음 주 진행될 회의에서 대출약관 개정의 대략적인 방향이 결정되면 이에 따른 대응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며 "만일 공정위가 약관 개정안을 밀어 부친다면 법적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양측간 관점이 다른 부분이 있는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히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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