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효지 기자 = 연일 유럽 부채 위기에 짓눌리던 외환시장에 또 다른 걱정거리가 떠오르고 있다. 바로 미국의 '재정 절벽(fiscal cliff)'이다.

재정 절벽은 정부의 재정 지출이 갑작스럽게 줄거나 중단돼 경제에 충격을 주는 현상을 일컫는다.

투자자들은 1조2천억달러(1천393조원)에 달하는 재정 적자를 안은 미국의 상황이 대서양 건너편의 유럽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다. 백악관과 의회가 재정 적자 해법을 두고 반목하는 가운데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합의가 어렵다는 점 등은 여러모로 유럽을 연상시킨다.

▲ 적자 감축과 성장 둔화 딜레마에 빠진 미국 = 미국 재무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2012회계연도 첫 8개월간 연방정부의 재정 적자가 총 8천445억달러라고 밝혔다. 이대로라면 미국은 4년 연속으로 1조달러가 넘는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미 정부와 의회가 재정 적자에 대한 해법에 합의하지 못하면 내년부터 자동으로 재정 적자 감축 방안이 시행된다.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적용됐던 낮은 세율이 오르고, 작년과 올해 한시적으로 적용한 소득세 2%포인트 인하 조치도 끝난다. 건강보험 혜택을 확대하기 위해 부유층의 세금은 늘리고, 경기부양책의 하나로 시행한 일시적인 영업세 인하는 만료된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미국 경제가 올해 말 재정 절벽에 부딪혀 내년에 다시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면서 재정 절벽이 현실화할 때 내년 상반기 미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 1.3%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의 존 론스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금융시장이 워싱턴 정가의 서로 다른 이익을 만족할 만한 해법으로 유도하고자 얼마나 곤두박질 쳐야 하는가"라며 "(재정 절벽이) 가장 큰 우려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연방준비제도(Fed) 역시 재정 절벽이 미국의 경기 회복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Fed는 지난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서 "급격하고 대대적인 재정 감축이 경제에 상당한 위험을 가할 것임을 여러 명의 위원이 우려했다"고 밝혔다.

▲ 美 달러화 타격 불가피 =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재정 절벽 우려로 미 달러화가 약세를 나타낼 것으로 본다.

도이체방크는 시장의 관심이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의 정치적 불확실성과 재정난으로 옮겨갈 것이라며 유로-달러 하락 압력이 완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은행의 앨런 러스킨 외환 전략 헤드는 "유럽에서 놀랄 만한 대형 재료가 나오지 않는 한 미 대선을 앞둔 불확실성과 정치권의 그리드록(민주당과 공화당의 권력 분점과 그에 따른 교착상태) 문제가 유로화를 1.25~1.30달러에 움직이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달러지수는 지난해 초 미국 정부와 의회가 부채 한도 증액을 두고 불안 기류를 만들 당시 72.681까지 하락했다. 이 지수는 26일 오전 9시 39분 현재 전장보다 0.07% 하락한 82.384를 나타냈다.

미국의 재정 문제가 시장의 주된 걱정거리로 떠오르면서 각국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액에서 미 달러화 비중을 줄이려 하고 있다.

독일 중앙은행(분데스방크)이 외환보유액에 호주달러를 편입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러시아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의 1%를 호주달러로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에는 스위스 중앙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원화채를 사들이기도 했다. UBS는 외환보유액 보유자산 중 소수통화의 비중이 5.0%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hj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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