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색 코뿔소(Grey Rhino)는 개연성이 높고 파급력이 엄청난 위험을 상징한다.

이는 세계정책연구소(World Policy Institute) 대표이사 겸 소장인 미셸 부커가 지난 2013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발표한 개념이다.

블랙 스완(Black Swan)은 좀처럼 발생하지 않아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대비하기 어려운 돌발 사태를 의미하지만, 회색 코뿔소는 다르다.

코뿔소는 덩치가 크기 때문에 멀리 있어도 눈에 띄고 몸무게도 2톤(t)에 육박해 진동만으로도 움직임을 느낄 수 있다.

부커 소장은 "회색 코뿔소는 신호가 미약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일부러 위험 신호를 무시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며 "우리는 자신의 승부수가 잘못될 가능성을 얕잡아보고 리스크보다는 장밋빛 전망에 시선을 빼앗긴다"고 책에서 말했다.

예컨대 지난 2005년 미국 은행들이 닌자(NINJAㆍNo Income No Job No Assets)대출을 실시, 개인들이 엄청난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주택을 구매하던 게 회색 코뿔소의 단면이다. 일반 실직자뿐만 아니라 화류계 여성, 학생, 심지어 개까지도 자기 명의로 대출을 받아 집을 구매했다.

은행들은 대출을 늘리기 위해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즉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계속 발행했고 투자은행은 이를 기초로 부채담보부증권(CDO)을 발행했다.

이미 수입도, 직업도, 자산도 없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줬다는 것 자체에서 경제의 건전성이 심각하게 악화됐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미국 투자은행들은 CDO라는 샴페인에 취해, 이 파생상품의 기초 자산이 된 주택담보대출이 깡통이란 걸 눈감아 버렸다.

2007년부터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닌자대출이 시작된 이후 3년간 치솟던 미국의 주택 가격은 정체됐고 대출 이자를 집 렌트비로 갚던 사람들의 돈줄은 메말랐다.

결국 하나둘 거리로 나와 텐트를 치기 시작했고 이는 '월가점령시위(Occupy Wall Street)'로 이어져 2012년까지도 미국 전역에 남아있었다.

뉴센추리파이낸셜의 파산신청, AIG의 손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양적 완화 등이 모두 여기서 촉발된 상흔이다. (산업증권부 김경림 기자)

(서울=연합인포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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