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철 한국자금중개 사장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태어날 때부터 공무원은 없다. 민간에서 와서 어려운 시험 거친 후 공무원으로 일하다 다시 민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공무원이라고 해서 뼛속까지 공무원처럼 살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이현철 한국자금중개 사장이 지금까지 후배 공무원들에 종종 해 온 말이다.

이 사장의 27년 공직생활은 범상치 않다. 행시 33회 재경직으로 공직에 입문한 이후 27년간 직급마다 1순위로 승진했다. 물론 그 덕에 빨리 1급이 됐다. 그리고 쉰을 갓 넘긴 이른 나이에 한국자금중개 사장으로 변신했다.

"한국자금중개 사장을 하려고 쌓은 커리어 같아요"라고 웃음 지으며 그가 말했다. 괜한 말이 아니다.

그는 재정경제부에서 국제금융과 금융정책 업무를 맡았고, 금융위원회로 옮겨 와서는 자본시장을 들여다봤다. 우정사업본부 보험사업단장으로 실무도 경험해 봤다.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을 거치면서 중요한 의사결정도 해 봤다.

외환과 채권, 주식시장을 두루 보면서 쌓은 경험이 지금의 이 사장을 만들었다.

이 사장은 공직에 있는 동안 제 자리에 안주한 적이 없다고 했다. 아무것도 자극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성격상 맞지 않는다고 한다. 뭔가를 좀 더 합리적으로 바꾸고, 새로운 것을 이야기할 때 눈빛이 빛났다.

그는 얼리어답터다. 손목에는 운동량, 칼로리 등을 기록하는 핏핏(Pitfit)이 채워져 있다. 핸드폰도 중국 화웨이의 최신형 핸드폰이다. 해외 직구로 산 것은 물론 상품의 출시 연월까지 꿰뚫고 있다. 변화 없이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사장의 지론이다.

취임식에서 이 사장이 한 말도 이런 그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다.

"공직에 있는 사람이 사장으로 와서 자리만 채우고 갈 것으로 생각하면 그 생각은 틀렸습니다. 저도 여기서 쌓은 레퓨테이션으로 다음 자리를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함께 성과를 내고, 그 성과의 과실도 함께 나눌 것입니다."

이현철 사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땄고, 미국 위스콘신주립대학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1989년 행시 33회로 공직에 입문했으며 관세청 교역국 등을 거쳐 재경부 국제통화기금(IMF) 파견업무를 마치고 지난 2007년 금융위원회로 옮겨 글로벌 금융과장, 자산운용과장, 자본시장과장 등을 역임했다. 2010년에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금융선진화팀장을 맡았고, 2012년에는 우정사업본부 보험사업단장, 2014년부터 2015년에는 금융위 자본시장국장, 기획조정관으로 재직한 후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을 역임했다.



다음은 이현철 사장과의 일문일답.



--1급까지 승진 가도를 달려왔는데 비결은

▲너무 개인적인 것이라 좀 부끄러운데 민간에 들어간 친구들을 열심히 벤치마킹했다. 공직에 있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안 하고 다들 와서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민간기업에 있는 친구들이 영어나 주식, 부동산 등에 대해서 공부할 때 관련 업무가 아니어도 공직에서도 열심히 공부했다. 지기 싫은 마음도 있지만, 공직이라 해서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성격상 맞지 않는다. 그래도 27년 공직에 있는 동안 안 좋은 일로 세간에 오르내리는 일 없이, 후배들의 길을 열어주고 잘 마친 것으로 인생의 1막을 마무리했다. 승진이 빠른 만큼 일찍 민간기업으로 나왔지만, 사장을 맡게 된 것은 또 하나의 기회라고 본다.

--공직생활을 일찍 마쳐 아쉬울 것 같은데 민간으로 옮긴 소감은

▲공무원으로서 1급을 마쳤기 때문에 나쁘지 않다. 그 이상의 정무직은 관운이다. 관운이 있다면 강원도에서 감자를 캐고 있어도 부를 것이라고 본다. 책임없이 월급 받는 것만으로 만족하기에는 아직 젊다고 생각한다. 내가 결심한 것을 실현할 수 있다는 면에서 대표이사직이 좋다. 대표이사가 된 것도 공직을 충실히 마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증시, 보험, 외환 등 금융시장 커리어가 만만치 않은데

▲과거 재경부 시절 국제금융부에서 근무한 후 자본시장과장, 국장, 자산운용과장, 1급 증선위원을 거쳤다. 그런 이력들이 도움이 많이 되길 바란다. 한국자금중개는 다른 금융공기업처럼 규모가 크지 않음에도 커리어와 딱 들어맞는 곳이다. 퇴임 후 100% 자리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지만, 업무 연관성이 100% 있다고 보고 어필해서 취업심사를 받았다. 그만큼 열심히 할 생각이다.

--보험사업단장이면 운용 규모가 컸을 듯하다

▲우정사업본부 보험사업단장으로 2012년부터 2년 일했다. 보험사업단에서 54조 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업무를 했다. 보험사업단은 일반 보험회사랑 완전히 똑같다. 상품도 자체 개발해서 팔고, 모집인 아줌마도 5천 명이나 있다. 단지 보장 한도가 2천만 원으로 적다는 제한이 있다. 당시에는 운용 규모가 커서 돈 단위도 100억 원 단위로 봤다. 300개는 300억 원 이런 식이다. 그 밑으로는 버림 단위였다. 물론 지금은 다 저희의 고객이다. (웃음)

--취임 후 어떤 마음 자세를 갖기로 했나

▲한국자금중개는 외환 쪽 업무가 중요하다. 그런데 달러-원 스팟 시장 점유율이 취임 후 보니 5%였다. 충격을 좀 받았다. 금융위기 전에는 41%였던 적도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기저효과가 있어 늘어날 일만 남았다고 본다. 바닥에서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새롭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스팟 쪽은 전자 체결방식이 돼 있지만, 파생, 스와프 쪽은 보이스로 한다. 다른 금융 선진국, 특히 일본마저 전자거래로 바뀌고 있다. 전자거래 시스템에 대한 준비는 돼 있다. 일본 같은 경우 전자거래로 바꾸고 나서 거래량이 3배 정도 늘었다고 한다. 사람이 직접 보이스로 하는 것보다 정확성이 높아지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다른 나라들도 전자거래로 많이 바뀌었다. 변화에 대비하고 있다.

--전자거래가 도입되면 브로커는 직업적인 위기 아닌가

▲개인들의 브로커업무는 약해질 수 있다. 그러나 플랫폼 비즈니스로서 옛날식의 아날로그 방식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KT의 사례를 볼 때 과거 전화교환수가 있던 시절에서 전기교환기로 바뀌는 과정이 있지 않았나. 국제적인 모빌러티(이동성)가 커진 만큼 환전수요도 커지고 있어 저희 사업도 그런 측면에서 시장 확대될 것으로 본다. 변화에 뒤처지지 않도록 기술적 준비, 인력 보강 등을 하고 있다. 지난달 '고벤처포럼'에 참석해서 최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도입 시 사라질 직업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공인회계사와 같은 직업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직업은 사라져도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있다. 브로커리지도 마찬가지다. 전자거래가 활발해져도 브로커리지 업무와 회사는 살아있다. 개인이 보이스로 하던 역할은 줄어들겠지만, 시장과 플랫폼으로서의 중개회사는 살아있을 것이다. 앞으로 전산 거래로의 변화를 생각하고 있다.

--본인의 특징이나 좌우명은

▲저는 얼리어답터에 속한다. 카카오톡 쓰는 것을 처음 배웠다고 하는 공무원들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답답하다. (시계를 보여주며) 이게 운동 트랙커다. 전화기도 화웨이 것이다. 직접 직구로 샀다. 최근에는 알리페이로 아내의 핸드폰을 사줬다. 한국에 없는 삼성 A9프로라는 모델이다.

삼성 다니는 후배가 삼성 핸드폰 안 쓴다고 섭섭해 하길래 정글북 작가인 키플링이 한 말을 들려줬다. 영국밖에 모르는 사람이 영국에 대해 뭘 알겠는가. 삼성에 다니면 세컨드폰으로 애플이나 다른 것도 써봐야 왜 전 세계적으로 애플빠라고 불리며 밤새 노숙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지 알 수 있다.

핸드폰뿐만 아니라 다른 일도 마찬가지다. 공직에 있는 동안 민간에 간 친구들을 보면서 계속 경쟁력을 갖추려고 노력했다. 변화에 빨리 적응해야 발전할 수 있다.

--한국자금중개 취임 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점은

▲홍콩지점이 빨리 정상화되는 게 급선무다. 아직은 흑자로 턴어라운드를 못 했지만 지난 8월에 실적이 괜찮았다. 이 수준이면 연내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홍콩지점이 정상화되면 수익이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내년이면 홍콩지점을 연지 10주년이다. 회사 전체로 볼 때 인력의 4분의 1이 홍콩에 있어 관심을 두고 있다. 최대 약점은 인지도인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마켓 평가가 좋은 브로커 인력을 많이 보강했다. 홍콩지점을 시작으로 글로벌 중개회사로 거듭나고자 한다.

--김영란법에 대한 생각은

▲법 규정 준수는 당연하다. 직원 교육도 이틀에 걸쳐 열심히 했다. 사장도 직접 참여했다. 감사실 차원에서도 열심히 보고 있다. 저희는 대상이 아니지만, 거래 상대방이 대상자가 될 수 있어 위법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준비하고 있다.

--과거 변화를 이룬 경험이 있다면

▲지난 2014년 자본시장국장 시절 증권사 NCR 제도를 개편하고, 주가변동 폭 상하 ±15%에서 ±30%로 바꿨다. 주가변동 폭은 17년 만에 처음 바꿨다. 또 분산투자율도 종전 10%에서 1967년 생긴 이후 처음 바꿨다. 그냥 손대지 않고 두면 더 합리적인 방법이 있는데도 계속 그대로 머무르게 된다. 나는 바꾸는 쪽을 택했다.

--취임 후 직원들에게 준 메시지는

▲취임식 때 직원들에게 공직에 있는 사람이 사장으로 와서 자리만 채우고 갈 것으로 생각하면 그 기대는 틀렸다고 했다. 어떤 자리에 가더라도 내가 다녀갔기 때문에 성과가 났으면 좋겠다. 나도 여기서 쌓은 레퓨테이션으로 다음 자리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함께 성과를 내고 나눌 생각이다.

회사에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떻게 개선해야 비용을 줄이고 성과를 낼지는 직원들이 잘 안다고 본다. 물어보지 않거나 사장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없거나, 이야기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하면 안될 것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고 했다. 나는 마이크 붙잡고 거래하는 직원들이 현장이고, 답이라고 본다. 그 해법을 직원들이 많이 알려줬으면 좋겠다.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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