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요즘 한국 재벌의 신경은 날카롭다. 1% 미만의 소유 지분으로 전체 계열사를 움켜 줘려다 보니 초조감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대표적 사례는 계열사 가운데 대주주 일가가 지분을 더 많이 보유하거나 지주회사가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하여 결국 이익을 몰아 주었을 때 대주주에게 더 유리한 회사로 부가 이동하는 현상, 소위 일감 몰아주기다.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의 기업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이를 굴파기(Tunneling)라고 부른다. 부실 계열사 지원(Propping)과, 대주주나 경영진이 자신의 부를 극대화하기 위한 편취(Expropriation)도 마찬가지로 여론과 정치권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부의 양극화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면서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재벌 때리기는 격화될 전망이다. 지배구조에 대한 법과 제도가 정착되고 진화할수록 이런 재벌의 입지는 좁아들 것이다.

대표 주자인 삼성에는 창업 이후 최대의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유럽과 미국의 경기침체 후폭풍이 만만치 않고 기술경쟁이 불꽃튀는 상황에서 지배구조의 공고화를 위한 상속의 안정적 연착륙까지 가야 할 길은 멀고 고민도 커지고 있다.

삼성의 미래는 무엇보다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사장이 그룹 계열사를 어떻게 나누느냐에 달려있다.

'경제민주화'의 광풍이 몰아치는 상황에서 이들 3세의 소유 구조에 대한 교통정리가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마무리되느냐는 수뇌부의 핵심 고민이다.

성공적 상속과 함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를 세계 1등으로 끌고 가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만약 삼성전자가 2등 기업으로 추락한다면 창업주에서 시작해 3세로 이어지는 상속의 의미는 퇴색될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당분간 '소유-전문 경영인' 체제는 공존할 것으로 보인다.

후일 성공적 상속으로 '소유 경영인'이 대를 잇는다면 전문경영에 비해 빠른 의사결정, 장기적이고 과감한 투자, 책임감 있는 경영이 가능할 것이다. 반면 낮은 투명성, 비민주적 의사결정, 시장과 괴리된 소유주의 주관적이고 독단적인 의사결정에 빠질 여지는 남는다. '전문 경영인'이 맡으면 높은 투명성과 민주적 다수에 의한 안정적 의사결정은 할 수 있지만, 단기적 성과추구, 전문경영자의 '참호 파기'( Entrenchment)에 의한 과소투자, 위험투자안 선호, 특권적 소비(Perquisite) 등 대리인 문제는 과제로 남을 것이다.

이 논쟁은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지만, 기업 연구가들은 최근 삼성과 애플을 비교하며 현재까지는 지배구조상 삼성이 애플보다 낫다고 지적한다.

삼성전자는 중층적 지배구조 때문에 유보가 계속 쌓여 투자가 장기적인 시각에서 이루어지고 절대액이 클 수밖에 없는 반면 애플은 단기적으로 혁신적 핵심기술이나 아이디어의 개발은 가능하지만, 외주를 주는 바람에 보조 기술에서 안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제품 수명주기의 도입기에는 혁신적 아이디어가 시장의 주목을 받지만, 기술의 안정성과 원가가 중요해지는 성장기 후반부터는 경쟁력을 잃기 쉽다는 얘기다.

이러한 소유구조 특징 때문에 상당기간 삼성의 승승장구가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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