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성규 이미란 기자 = 이달 말 총파업을 예고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의 요구안에는 근무시간 단축이 들어 있다.

현재 평균 오후 9~11시에 퇴근하는 은행원들의 근무시간을 줄이는 대신 신규 인력을 채용해 일자리 확대에도 이바지하자는 것이다.

금융노조는 2009년 은행 영업점 개점시각을 30분 앞당기면서 퇴근문화를 개선하기로 합의했지만 사측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금융노조가 근무시간 축소와 함께 7%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임금단체협상이 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임금 인상과 근무시간 단축, 채용 확대는 양립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눈부신 성장 뒤 짙은 그림자

기업은행은 지난 5월 영업점 직원들의 평균 퇴근시각을 오후 6시38분으로 예전보다 3~4시간 앞당겼다.

경영평가에 퇴근문화 개선도를 확대 반영하고, 회의와 보고서 등을 줄인 결과다. '집중근무시간'을 종일로 늘리고, 그래도 퇴근이 늦어지는 영업점이나 부서의 장은 조준희 행장과 유택윤 노조 위원장이 참석하는 간담회에서 이유를 설명하고 해결책을 찾도록 했다.

기업은행이 이처럼 퇴근문화 개선에 앞장선 것은 과도한 업무로 직원들의 '삶의 질'이 크게 저하됐다는 반성 때문이다.

전임 윤 행장 당시 업계 5위였던 기업은행은 퇴임 무렵 하나은행을 자산과 순이익 면에서 앞지르며 4위로 올라섰다. 임기 마지막 해인 2010년 당기순이익은 1조2천901억원으로 신한은행(1조6천484억원)에 이은 업계 2위를 차지했다.

직원 1인당 생산성은 국민은행과 신한, 우리, 하나 등 시중 5개 은행 중 1위였다.

그러나 평균 12~13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으로 직원들의 불만이 속출했다.

윤 전 행장은 2009년 노조와 합의 없이 경영평가에서 퇴근문화 개선도 항목을 삭제하기도 했다. 이에 노조가 천막농성을 벌이는 등 강하게 반발하면서 기업은행은 다시 퇴근문화 개선도를 경영평가에 반영하는 홍역을 치렀다.

기업은행이 윤 전 행장 시절 눈부신 성과를 거뒀지만 이는 '지속 불가능한 발전'이라는 견해가 힘을 얻은 셈이다.

◇퇴근 앞당기면 수익은?

조준희 행장이 20010년 12월 취임한 이래 줄곧 퇴근문화 개선에 앞장섰지만 기업은행의 순이익은 견조한 상태다.

지난해 기업은행은 1조4천40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며 하나은행(1조2천118억원)을 눌렀다.

직원 1인당 생산성은 충당금 적립전 이익 기준 4억5천900만원으로 국민(2억6천만원)과 신한(3억500만원), 우리(3억400만원), 하나은행(2억5천만원)을 모두 앞섰다.

올해 역시 지난 1분기 기준으로 직원 1인당 생산성은 1억2천200만원으로 시중은행 중 가장 높다. 국민과 신한은행은 각각 6천만원과 9천200만원, 우리와 하나은행은 8천100만원과 5천만원이었다.

조 행장은 퇴근시각을 앞당긴 것은 물론 신용카드 유치 캠페인과 같이 직원들에게 무리한 스트레스를 준다고 판단되는 행사를 없앴다.

조 행장은 "신용카드 10장을 권유로 만들면, 고객의 절반 이상이 가위로 자른다"며 "이런 무의미한 일을 하면서 직원들은 캠페인 결과로 평가받는다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퇴근문화 개선과 신용카드 유치 캠페인 폐지는 일을 덜 하기보다는 불필요한 일을 하지 말자는 의미다"며 "직원들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조직이 결국 상처를 입는다는 반성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근무시간 축소ㆍ일자리 확대 신호탄 될까

근무시간이 단축되면서 기업은행 직원들의 노동강도는 이른바 '살인적인' 수준으로 높아졌다.

기업은행 본점에서 일하는 한 과장은 "점심 먹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지만 바빠서 먹지 못할 때도 있다. 화장실 다녀올 시간도 모자랄 정도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퇴근이 빨라지지만 업무량은 그대로기 때문에 이른 출근이 잦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근무시간을 줄이되 근무 강도도 '인간적인' 수준으로 낮추려면 답은 일자리 확대다. 실제로 금융노조는 근무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준희 행장 역시 신입행원 채용을 늘려 근무시간과 업무량을 중장기적으로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금융노조가 근무시간 단축을 관철하려면 다른 부분에서 양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노조가 근무시간 단축과 7% 임금 인상을 모두 받아내려 하면 일은 적게 하고 돈은 많이 받겠다는 '귀족노조'라는 인상만 굳힐 것이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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