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연내 연방기금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화면서 벨기에 태생의 경제학자인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2008년 리머브러더스 파산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기축통화(reserve currency)인 달러화를 무제한 공급했던 미국이 유동성을 죄면서 트리핀 역설(Triffin paradox)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금리 인상은 '자국 우선주의 선언'

트리핀 역설은 달러화를 너무 많이 공급하면 미국의 외채가 쌓여 거시경제 안정성을 해치는 반면 너무 줄이면 글로벌 디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일대 교수로 재직하던 트리핀이 1960년 미국 의회에서 달러화와 금 태환의 심각한 결함을 지적하고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를 예언하면서 유명해졌다.

미국이 연방기금금리 인상을 통해 트리핀의 역설 가운데 자국 우선 주의를 선언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긴장한다. 금리 인상은 미국이 국제통화인 달러화를 원할하게 공급하던 역할에서 벗어나 자국 금융시장과 경제안정에 치중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연말에 금리를 올리면 각국의 환율은 요동칠 수 밖에 없다. 특히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의 경우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반영해야 한다. 세계 경제의 통합 속에 자본 유출입에 따른 변동성을 완화할 방법이 없어서다. 하버드 대학의 리카르도 하우스만(Ricardo Housmann) 교수는 비결제통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의 원죄(original sin)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신흥국이 천문학적 규모의 외환보유고를 쌓는 것도 자본 유출입에 따른 외환위기 위험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다. 자국 통화가 국제결제 통화로 사용되지 않는 원죄를 가진 신흥국은 막대한 규모의 외환보유고를 유지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비용도 치러야 한다. 신흥국 외환보유고는 미국채 등 달러화 자산으로 대부분 운용되면서 대내외 금리 차이에 따른 손해까지 감수한다.

◇ 역송금 등에 환율 한 달 새 37.1원 급등

우리경제는 벌써부터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달러-원 환율은 종가 기준으로 지난 24일 1,131.00원에서 28일 1,144.90원으로 13.90원이나 오르는 등 급등세를 타기 시작했다. 이달 첫 거래일인 4일 종가 1,107.80원에 비해서는 무려 37.1원이나 올랐다. 프랭클린 템플턴 등 원화채 큰 손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고 역송금하면서 달러-원 환율도 가파른 상승 압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됐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주범이면서도 가장 먼저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통해 화폐발권 차익을 의미하는 시뇨리지 효과를 마음껏 누린 결과다.

미국과 달리 우리는 가계부채 급증과 수출경쟁력 하락 등으로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부는 아직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려야 한다며 1차 방정식 수준의 해법만 내놓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가 거시경제의 안정에 어떤 도움을 줄지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 컨트롤 타워 가운데 한명이었던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재벌을 상대로 수금했다는 의혹을 살 지경이니 고차원의 해법을 고민할 틈이나 있었겠나.(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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