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회사채 수요예측이 본격 실시된 이후 투자자를 찾지 못해 증권사가 떠안은 '미매각' 회사채 규모가 무려 4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과 같은 저금리 추세가 멈추고 금리의 방향성이 위쪽으로 돌아설 경우 증권사에 상당한 평가손실을 안기는 '뇌관'이 될 것이란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회사채 수요예측이 의무화 한 이후 처음으로 회사채 발행(한국캐피탈)이 이뤄진 지난 5월11일부터 이달 6일까지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증권신고서(채무증권)를 연합인포맥스가 10일 분석한 결과, 인수단으로 참여한 24개 증권사가 떠안은 미매각 (일반)회사채 규모가 4조1천250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발행된 7조400억원의 회사채 가운데 58.6%에 이르는 규모다.

특히 회사채 발행 주관 경쟁에 공격적으로 나선 KB투자ㆍ우리투자ㆍ한국투자증권과 신한금융투자 등 소위 발행시장 '빅4' 증권사가 안고 있는 미매각 물량이 1조9천억원을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증권사들이 대규모 물량을 떠안게 된 것은 수요예측 실시로 증권사들이 주관사 경쟁에 '올인'하면서 기업들이 제시하는 비합리적 초저금리 수준을 그대로 수용한 탓이다.

기업들의 신용등급과 발행 회사채의 만기 등을 고려해 평가되는 일종의 시장금리 컨센서스인 민평금리를 크게 밑도는 수준으로 수요예측 금리가 형성되자 기관투자자들의 '수요예측 보이콧'이 일상화됐고, 결국 투자 수요를 찾지 못한 물량은 증권사들의 차지가 됐다.

회사채 시장 관계자들은 증권사들의 과도한 주관사 경쟁과 기업들의 비정상적 '금리 욕심', 회사채 발행제도 개선안을 주도한 금융당국과 금융투자협회 등의 수수방관 등이 어우러져 발행시장의 시스템을 비정상적으로 꼬이게 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증권사들이 떠안은 대규모 미매각 물량을 당장 처리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다.

증권사들은 통상 '수수료 녹이기(발행금리에 일정 스프레드를 얹는 것)'를 통해 싼 가격에 내다 팔면서 물량을 줄이곤 하는데 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이도저도 못하고 있다.

수수료를 녹여 금리 수준을 높여(가격을 싸게) 시장에 내놓더라도 절대금리 수준이 워낙 낮게 유지되고 있는데다, 신용스프레드가 역사적 바닥 수준에서 횡보하고 있어 회사채 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리면서 제대로 매매가 성사되지 않고 있다.

대형 증권사의 회사채 담당 고위 임원은 "수수료 녹이기로 물량을 시장에 내놓았지만 팔지 못했다"면서 "상당수 증권사들이 미매각 물량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증권사의 크레디트 애널리스트는 "다행히 5월 이후 국고채 금리가 추가로 하락했고, 회사채 'AA-' 금리도 조금 더 하락한 것이 증권사에는 천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금리가 위로 튀기 시작할 경우 증권사들은 본격적으로 '미매각 리스크'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고 예상했다.

이 애널리스트는 증권사들의 평가손실이 예상되는 '트리거' 금리 수준을 국고채 3년물 기준 3.40% 수준으로 봤다.

일부 대형 증권사들은 '인수북(회사채 인수한도)'에 쌓아 놓은 미매각 물량의 외부 매각에 실패하자 자체 '운용북'으로 넘겨 부담을 분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 증권사내에서 주머니만 바꿔 놓은 셈이어서 시장 리스크에 노출된 수위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대형증권사의 DCM파트 임원은 "다각도로 물량 처리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중이다"고 말했다.

한편, 증권사들이 미매각 회사채 물량을 대규모로 쌓으면서 추가로 회사채를 인수할 여력도 크게 줄고 있다.

대형 증권사들의 경우 '인수북' 규모가 대략 4천억∼6천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미 적게는 60∼70%, 많게는 70∼80% 수준을 채웠다.

일부 대형 증권사는 지난해 말 유상증자로 자본력을 확충한 상태여서 '인수북' 확대 가능성도 있지만 미매각 물량의 처리가 지지부진한 상태여서 이 마저도 여의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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