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태동기였던 1979년에 '최초의 여성 외환딜러'로 출발한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이 33년간 외환시장에서 겪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초보자도, 베테랑도 자신 있게 속단할 수 없는 외환시장, 그만큼 도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매주 목요일 김상경의 외환이야기를 통해 외환딜러들의 삶과 알토란 같은 외환지식을 만나면서 '아는 사람만 알던' FX시장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



①딜러의 일과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외환시장이 존재했다고 할 수 없었던 1980년,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으로 외환딜러 계에 첫발을 디뎠을 때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 다른 시장이 되었다. 외환딜러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다. 이제 개인들도 외환이라는 상품을 투자수단으로 사고팔 수 있는 시대가 왔으니 말이다.

"사십이면 환갑"이라고 부르는 전쟁터 같은 딜러 세계를 그것도 서른두 살의 나이에, 두 아이의 엄마로 입문한 나는 재주가 없어도 지속적으로 노력하면 하늘이 돕는다는 진리를 일찍이 터득했다.

꾸준함이 비범함을 만든다. 꾸준하게 그 분야에서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에 임하는 사람이고 해서 늘 투지에 넘친 결의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매일매일 치르는 '트레이딩'이라는 전투를 한결같이 긴장 속에서만 지내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더라면 지레 지쳐서 무너져 버렸을 것이다.

딜링룸에 도착하면 늘 딜러들 다섯 명이 함께 모여 하루의 딜링 전략을 짰다. 세계 외환시장과 직통으로 연결돼 있는 로이터 딜링 시스템과 연합인포맥스, 그리고 직통 전화기들이 컴퓨터 옆에 나란히 놓여있다. 국내 외환시장이 열리기 전에 앞서 열린 뉴욕 시장의 종가와 호주시장 그리고 도쿄 시장의 시가를 살피는 것이 첫 일과였다.

우선 로이터통신에서 제공하는 글로벌 시장정보와 연합인포맥스가 제공하는 정보를 꼼꼼히 체크한다. 스크린에 전일 동향과 예상 거래 범위, 거래 전략 등을 체크한다. 뉴욕 시장이 끝난 후 우리보다 한 시간 빠른 시드니 시장에서 어떻게 뉴욕 종가를 받아들여 움직이는가를 꼼꼼히 살펴본다.

주요 글로벌 외환시장을 살펴본 다음 딜러들 간에 서로 정보를 나누기 위해 수화기를 집어 든다.

고객에게 오늘의 외환시장 동향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예측해주기 위해 서로의 정보교환이었다. 주요 고객에게 전화를 걸고 나서 각 은행의 딜러들과도 정보를 교환한다.

이렇게 촘촘히 짜인 아침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점심은 샌드위치로 간단히 때우는 때가 허다했다. 다시 오후의 시장을 준비해야 한다.

나의 하루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시작됐으나 오늘의 끝이 어떻게 마감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②도박과 외환딜링은 엄연히 다르다

대체 개인들의 돈을 외환이라는 상품에 투자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고 팔만큼 매력이 있는 것일까?

외환시장이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기에 많은 투자자들이 자신의 돈을 투자하면서 애를 태우면서도 트레이딩을 하는 것일까?

혹시 외환시장을 한판의 도박장으로 보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포커 판에서 도박하듯이 한 딜러들은 시장에서 대부분 사라졌다. 트레이딩과 도박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외환딜링은 매매차익으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개인도 기업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베팅한다'는 말은 흔히 내기를 걸때 사용되는 말이다.

나의 첫 번째 책인 '나는, 나를 베팅한다'는 마치 외환딜러의 직업이 베팅을 하는 도박사처럼 연상됐으나 인생의 순간순간 결정해야 할 일들을 베팅하듯이 하였다는 뜻으로 보기 바란다.

도박과 트레이딩의 어떤 점은 무엇일까? 도박은 시작과 끝이 모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최 측에 의해서 진행되기 때문에 내가 도중에 게임을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가 없다.

그러나 트레이딩은 내가 원하는 시점에 거래를 시작하여 내가 원하는 시점에 거래를 끝낼 수가 있기 때문에 이익과 손실을 내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도박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시작과 끝이 주최 측에 의해서 결정되지만, 트레이딩은 시작과 끝을 내 의지에 의해 결정할 수 있다.

또 다른 점은 도박은 미리 정해놓은 승률이 있다. 도박을 벌려 놓은 주최 측이 돈을 더 벌 수 있도록 시스템이 돼 있다. 그러나 트레이딩은 미리 정해진 승률에 따라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시장의 움직임에 따라 결정이 된다. 그러므로 지금은 손해를 보고 있지만 확률적으로 언젠가는 내가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곤란하다.

딜러는 미래를 예측하는 점쟁이가 아니라 하루하루 예측을 단기적으로 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장기적인 예측은 경제학자들이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트레이딩은 지극히 단순한 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더 거래를 잘할 수 있다. 외환시장은 똑똑한 경제학자들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보통의 머리를 가진 딜러들이 거래하는 곳이다.

훌륭한 딜러가 되려면 국제경제의 흐름, 세계정치 판도 등을 분석하는 판단력과 감각이 뛰어나야 한다. 그러나 그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키워져야 한다.

아무리 똑똑한 두뇌를 가진 딜러라 해도 시장 참여자 대부분이 생각하고 있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트레이딩을 한다면 시장에서 도태된다.

딜러는 시장을 움직이고 있는 시장의 정보를 잘 해석하고, 또 그것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잘 아는 것이 똑똑한 딜러이다.



③돈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발명품이다

돈은 지구상에서 발명한 최고의 상품이다. 만일 돈이라는 발명품이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전 세계가 하나로 된 외환시장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주식시장을 합치더라도 외환시장만은 못하다. 이렇게 외환시장은 해마다 급성장하고 있다. 다른 어떤 시장도 이렇게 급성장하는 시장은 없을 것이다.

인터넷이 생기기 전에는 외환시장은 은행에 등록된 트레이딩 시스템에 의해서 은행딜러들이 거래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외환거래 규모의 수치는 은행딜러들이 거래한 것을 모두 합치면 거의 전부가 될 정도였다. 물론, 은행에서 1백만불 이상의 계좌를 오픈한 거액자산가 (High Net Worth Individuals)들에게 트레이딩의 기회를 주면서 이들 거래도 외환거래 거래량 규모에 보탬이 됐다.

그러나 인터넷이 생기고 나서부터 외환시장은 엄청나게 변했다. 몇 백불을 투자해 인터넷을 통해 개인들도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전 세계시장을 떠돌면서 거래를 할 수 있다. 즉, 인터넷의 발전과 온라인 트레이딩 시스템의 개발과 맞물려서 개인투자자들이 외환을 투자대상으로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외환시장의 투자자들은 외환시장이 주식시장보다도 훨씬 간편하고 쉬운 시장이다. 왜냐하면 외환 트레이딩은 주식시장과는 달리 몇몇 통화만을 골라서 사느냐 아니면 파느냐를 선택하면 된다. 적어도 유동성이 많은 5개 통화 (미 달러화, 일본 엔화, 유로화, 영국 파운드나 스위스 프랑) 중에 한두 개를 선택해 거래하기 때문에 주식투자처럼 수많은 주식 중에 탁월한 종목을 선택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다는 얘기이다. 그래서 선택사항에서 우선 간단하다고 한다.



④나도 벼락부자가 돼 보자

"나 역시 베팅하면 가능할 것 같다." "나도 대어를 낚을 수 있을 것 같다. 대박 한번 쯤은 나에게 올 수도 있겠지..."

"그래. 일만 해서는 결코 출세할 수 없지. 나라고 부자 되지 못하라는 법이 없지"

"은퇴 후 아주 좋은 투자대상이야"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생각들로 가득 찬 개인 투자자들이 많이 생기면서 전 세계 외환시장의 규모 확장에 힘을 보태주고 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의 통계에 의하면 외환시장에 투자하는 우리나라 개인 투자자 중 90% 이상이 손실을 봤다.

이렇게 많은 손실을 봤다는 얘기는 트레이딩에 참여한 개인 투자자들이 미숙하던가 아니면 외환 트레이딩이 결코 쉬운 투자수단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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