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사장이 휴가를 일주일 떠났다면, 사장 비서는 언제 휴가를 내는 게 좋을까"

한국투자신탁운용 지원부문 신입 직원 채용 시험에 나왔던 문제다.

사장과 같은 날짜에 휴가를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겠고, 사장과 다른 날짜에 가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각자 그렇게 판단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조홍래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가 생각하는 답안은 '사장과 다른 날짜에 휴가를 가는 것'이다. 사장 비서의 역할이 비단, 사장의 일정 관리와 사장 개인의 필요를 챙기는 것뿐 아니라 '사장실' 이란 사무적 공간을 관리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정답이 없는 문제 같지만, 채용 전형이란 게 지원자와 회사 간의 궁합을 맞춰보는 과정이란 점에서 회사가 원하는 사람을 골라내는 사실상 '정답이 있는' 문제다.

운용부문 지원자들의 경우, 생활 속에서 접하는 글 중 서로 다른 논리적 오류를 범한 글 5개와 오류 유형을 설명한 5가지 글을 서로 연결짓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

지원자들이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지 테스트해 보기 위한 문제다. 인터넷 채용 카페에서 찾은 '면접 모범답안'을 달달 암기하는 것보다 평소 책을 가까이하고, 생각하는 습관을 길렀던 사람이 유리하다.

이번 채용에서 이 문제의 정답을 맞힌 이는 단 한 명에 불과했는데, 경제·경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전공자였다는 후문이다.

위 문제들은 조 대표가 이틀 밤 야근을 하면서 직접 출제한 것들이다. 자신이 평소에 잘못됐다고 생각하거나 간과한 부분들을 기억해두었다가 문제로 만드는데, 지난해 초 취임 후 시작해서 벌써 2년 째다.

그가 이렇게 채용방식을 바꾼 것은 과거 임원 시절 면접관으로 면접장에 들어가면서 수년간 느꼈던 경험 때문이다.

수년 전 축구선수 박지성이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던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꾸준한 노력과 성실함의 대명사였는데, 물론 그해 면접장에서는 자신을 '박지성 형 인재'라고 소개하는 이들이 조마다 나타났다.

면접관 중에는 지원자들의 '버킷리스트'가 무엇인지 묻는 이도 있었다. 이런 질문과 답변만으로는 지원자들의 업무 능력이나 사고력을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교육이 백년대계라면, 채용은 앞으로 30년 후를 보고 사람을 뽑는 것과 같다.

증권사에 갓 입사한 신입 직원이 고도의 사고력을 요구하는 업무를 맡게 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생각하는 힘'이 중요하다는 게 조 대표의 생각이다. 그래서 바꿨다.

과거 실무진 면접과 임원면접으로 나뉘었던 면접 전형도 실무진과 임원이 함께 들어가도록 했다. 실무진 면접에서는 '실전지식'을, 임원면접에서는 '인성'을 너무 강조해서 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다.

한투운용의 이번 신입사원 모집도 벌써 막바지다. 1차 면접을 마치고 전일 최종 면접 대상자 약 10여 명에게 통보가 갔다.

한투운용 내부에선 어려운 관문을 뚫은 만큼 이들 중 '숨어있는 원석'이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산업증권부 김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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