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 국제금융가가 신뢰의 위기에 부닥쳤다. 리보(Libor.런던은행간금리) 조작 스캔들은 금융의 신뢰에 치명상을 입혔다. 은행은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공적인 지표를 조작했고 당국은 알면서도 쉬쉬하고 넘어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영국중앙은행과 뉴욕연방은행 모두 리보 조작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리보의 조작은 다른 지표도 왜곡시켰다. Ted 스프레드와 프라임모기지론(우량주택담보대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리보에 연동돼 금리가 정해진다. 리보가 왜곡되면 이 금리도 엉터리가 되는 셈이다.

런던금융시장의 부활과 함께 국제표준이 된 리보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사람의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금리는 더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국제금융계는 시장의 힘으로 거래되는 새로운 금리를 서둘러 찾고 있다.



# 수학적 모델을 바탕으로 한 퀀트 기법을 쓰는 헤지펀드 시타델은 최근 증권감독위원회(SEC)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SEC는 시타델이 두개의 증권브로커를 이용해 주식을 동시에 사고 파는 이른바 '워시 트레이드(위장매매)'로 시세를 조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시타델은 2008년 금융위기 때 거래 모델이 엉키는 바람에 최악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악명이 높다.

시타델은 주식시장 뿐 아니라 외환시장까지 발을 들여놓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외환 거래 업계는 재빨리 손을 썼다.

글로벌 외환 거래 플랫폼인 EBS는 고빈도 거래(High Frequency Trading)와 초단타 주문(Flash Orders)을 금지하기로 했다. 고빈도 거래가 시장 불안과 조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주식시장과 파생상품시장을 교란한 것으로 비판받는 헤지펀드들이 외환시장에서도 세를 불리고 있는 점을 염두에 둔 조치로 해석된다.



# 미국의 선물회사 페레그린은 고객 돈을 빼돌리고 회사 사장이 자해소동을 벌여 파문을 일으켰다. 러셀 바센도르프 사장은 법정에서 20년간 고객 돈 1억달러(한화 1천150억원) 이상을 횡령한 사실을 인정했다.

미국 선물사의 고객 돈 횡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에 사상 8번째 규모의 파산신청을 한 MF 글로벌은 아직도 16억달러의 고객 돈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고객 돈과 회사 돈을 분리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운용하는 방식이 문제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형태의 자산운용은 업계의 신뢰를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감독 당국에는 서류를 조작해 허위로 보고하거나 아예 보고하지 않는다.



# 금융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상대를 믿지 못하면 돈을 빌릴 수도 없고, 빌려줄 수도 없다. 금융의 기본 철학은 서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묵적 믿음에서 출발한다. 신뢰가 무너지면 금융시스템은 존재 의미가 없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는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진다는 교훈을 남겼다. 은행들이 서로 믿지 못하면 금융시스템이 경색된다. 자금이 돌지 않으면서 위기가 확대 재생산된다. 가계와 기업은 현금을 꽁꽁 묶어두고 눈치만 본다.

미국 재무인협회(AFP.Association for Financial Professional)가 최근 美 기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98%가 '돈을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답했다. 지금은 돈을 굴려서 이익을 낼 때가 아니라 곳간에 쌓아 위기에 대비할 때라고 판단한 셈이다. 이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상품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보증하는 예금이다. 나머지 상품엔 관심이 없다.

기업들은 이미 심상치 않은 조짐을 감지했는지도 모른다. 2008년 이후 여러 번의 위기를 거치면서 기업들은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유럽의 재정위기 장기화 ▲중국의 경기둔화 ▲미국의 재정절벽과 경기하강 우려 등 세계 경제는 3대 악재에 휩싸여 있다. 이런 가운데 금융의 신뢰마저 무너지면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금융의 신뢰 회복이 절실하다. (국제경제부장)

jang7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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