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임단협 안건으로 한 곳도 올리지 않아

현 정부 대표작품 인식 강해 사측도 발 빼



(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현정 기자 = 정부가 추진하는시중은행 성과연봉제 연내 도입이 사실상 무산됐다.박근혜 대통령이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데다 경제 컨트로 타워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경제부총리로 임명되며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데다 은행권 노조위원장 교체로 협상 자체가 쉽지 않아졌다. 정권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되자 시중 은행장들도 이사회 강행보다 한 발 물러서는 분위기다. 은행들이 현정권과 선긋기에 나서면서 경제리더십의 레임덕 현상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 노사는 성과연봉제 도입 관련 협상을 중단한 상태다. 지난달 19일 전국금융노동조합이 사측에 요청한 산별교섭을 끝으로 은행 노사간 관련 논의는 한 달 넘게 끊겼다.

시중은행들은 연말 임금단체협상에서 성과연봉제 도입 안건을 상정할 계획이 없다.

KEB하나은행은 내년 단협을 진행할 예정인데 성과연봉제 안건은 다루지 않을 방침이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당초 통합노조와 임단협을 진행하면서 성과주의 도입 논의도 할 예정이었으나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성과연봉제를 제안하는 데 부담이 크다"며 "하나·외환 두 은행의 두 은행간 임금·복지·인사 체계 일원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내년 1월 출범하는 통합노조와 기존 노조와의 업무 추진 경계가 모호한 과도기 상황인 데다, 함영주 행장의 임기가 내년 3월 만료됨에 따라 연임 여부가 확정된 이후이야 임단협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도 성과연봉제 도입 안건은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을 계획이다.

신한은행은 이미 일부 영업직무와 자산관리 업무 쪽 직원들에 대해 개인 평가를 실시하는 등 부분 성과주의를 적용하고 있는 만큼 향후 진행 과정을 지켜보고 확대 논의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다음 달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금융권 노조선거도 성과연봉제 도입의 발목을 잡았다.

금융노조는 이날까지 후보 등록을 마치고 다음달 20일 투표를 진행한다. 이번 금노위원장 선거에 시중은행 현 위원장들이 대거 도전하면서 사실상 사측과 성과연봉제 논의에 나설 여력이 없다.

또 KB국민은행, 우리은행 씨티은행 등 주요 은행들도 노조 교체기와 맞물리면서 상황 변화를 당분간 지켜보고 성과연봉제 도입을 재추진하기로 했다.

실제로 일부 은행은 성과연봉제 도입 확대를 위해 노사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지만 개점휴업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중은행 인사부 관계자는 "성과연봉제보다 희망퇴직 실시 여부 등 민감한 현안에 합의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며 "새로운 노조 집행부가 구성되기 전까지 (성과연봉제를 포함한) 임금체계 개편 논의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성과연봉제는 박근혜 정권 차원에서 강하게 밀어붙였던 대표 정책이다. 금융공기업부터 강행하며 연내 시중은행 도입까지 마무리 지을 방침이었으나 최순실 국정농단의 결과물이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

성과주의 확산에 총대를 맺던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하영구 은행연합회장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이후 입장이 애매해진 상태다.

금융권 관계자는 "성과주의가 기본적인 방향이 맞다 하더라도 박근혜 정부의 대표 작품이라는 인식이 강한 상황에서 누구도 나서 추진하기 어려워졌다"며 "어느 은행도 먼저 나설 이유가 없어 한동안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hjlee@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