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마부작침(磨斧作針), 상유십이(尙有十二), 침과대적(枕戈待敵), 행불무득(行不無得)…'

정유년(丁酉年) 벽두부터 경제ㆍ금융수장들의 신년사에서 사자성어와 고사성어가 넘쳐났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한 경제위기라는 인식에 '위기돌파'의 결기를 다지는 의지가 신년사에 고스란히 담겼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이 촉발할 세계 무역질서 재편과 미ㆍ중 간 갈등 심화 등의 대외 불확실성과 대통령 탄핵심판과 조기대선 가능성이라는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올 한해 경제는 앞길을 예측하기 어려운 시계제로의 상황이다.

매년 초 정부와 금융사 수장들이 내놓는 신년사에서는 그해의 정책 방향과 경영목표 등을 보다 명확하게 보여주는 메시지의 수단으로 사자성어와 고사성어가 인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올해는 예년보다 더욱 두드러진 모습이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3일 "올해가 어느 때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이 많은 만큼 명확한 목표와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뚜렷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 사자성어만큼 좋은 것은 없다. 그런 측면에서 올해 신년사에서 유독 인용되는 횟수가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와 금융당국 수장들의 신년사에서는 경제위기를 넘어서자는 결의에 찬 의지를 담은 사자성어 인용이 많아 눈길을 끈다.

우리 경제 콘트롤타워인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국민 신년사에서 '마부작침'이라는 사자성어를 꺼내 들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의 마부작침은 어려운 일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정부와 기업, 근로자 등 경제주체들이 하나로 뭉쳐 위기를 극복한 과거 전통을 다시 한번 만들어 보자고 강조한 말이다.

유 부총리는 기재부 공무원들에게는 일이관지(一以貫之)의 자세로 일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오는 이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기재부가 중심추가 돼 국민을 위한 정책이 흔들리거나 멈춰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올해가 정유재란이 발발한 지 7갑(甲, 420년)이 되는 정유년이라는 점에서 이순신 장군의 의지를 빗댄 표현도 신년사에서 여러 번 등장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 대승에 앞서 선조에게 올린 교지에 들어있는 '신에게 아직 12척의 배가 있다'는 뜻의 상유십이를 신년사에서 언급했다.

임 위원장은 이를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소명을 반드시 완수하겠다는 단단한 기대와 각오로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유 부총리도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 하루 전날 부하들에게 말한 '일부당경 족구천부(一夫當逕 足懼千夫)'를 신년사에서 인용했다.

한사람이 지키면 능히 천명을 두렵게 할 수 있다는 이 말을 통해 "기재부 공무원들이 최후의 방어선이 돼 비상한 책임감과 긴장감으로 한해를 헤쳐나가자"고 주문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창을 베고 자면서 적을 기다린다'는 뜻의 침과대적을 제시했다. 올 한해가 어느 때보다 책임이 막중한 한 해가 될 것인 만큼 매사에 높은 수준의 경각심을 갖고 업무에 임해달라는 메시지였다.

금융사 수장들의 신년사에서도 위기를 돌파하고 강건한 의지 다지기를 독려하는 사자성어와 고사성어 인용이 많았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과 한진해운 사태로 힘겨운 한 해를 보낸 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은 '행불무득(行不無得)'을 신년사에 담았다. 조직 전체가 혁신의 불길이 타올라 변화의 불씨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 말이다.

부실 기업구조조정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지탄을 받은 점을 반성하고, 국책은행의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하기 위한 대대적인 변화와 혁신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조선업 구조조정 부실로 대규모 손실을 경험한 NH농협금융지주의 김용환 회장은 서거정의 한 시에 나오는 '연비어약(鳶飛魚躍)'이라는 화두를 내놨다.

솔개는 하늘에서 날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뛴다는 이 말을 통해 지난해의 어려움을 딛고 다시 도약과 비상을 꿈꾸는 조직이 되자고 당부했다.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통합을 통해 KEB하나은행으로 하나 된 하나금융지주의 김정태 회장도 통합의 정신을 통해 도약하자는 의지를 신년사에서 담았다.

김 회장은 거문고의 줄을 다시 맨다는 뜻의 현량대책(賢良對策)을 통해 통합 이후 기업문화와 영업방식의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면서도, 협력쟁선(協力爭先)이라는 말로 '원 컴퍼니(one company)'로 거듭하기 위한 협력의 정신을 당부했다.

과점주주를 맞으면서 민영화의 길로 들어선 우리은행의 이광구 행장은 한 방울 한 방울의 이슬이 모여 큰 물줄기가 되고 결국은 바다를 이룬다는 뜻의 '노적성해(露積成海)'를 인용, 금융영토 확장의 의지를 다졌다.

이 행장은 "민영화는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고 강조하면서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1조 원 이상의 추가 수익 확보가 필요한 만큼 전 직원이 사명감과 열정으로 똘똘 뭉쳐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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