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백웅기 기자 = 주변국과의 정치적 갈등이 경제ㆍ금융 협력 관계에도 영향을 주는 이른바 지정학적리스크가본격화하고 있다.일본이 부산 영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 설치에 항의해 6일 한ㆍ일 통화스와프 협상을 중단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도 이런 차원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 통화스와프까지 미칠까

대통령 탄핵소추로 인한 국정공백과 혼란이 지속된 터라 기획재정부 등 우리 정부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향후 미국, 중국 등 우리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국가와 정치ㆍ외교적 사안에서 엇박자가 나타날 경우 이번 통화스와프 중단과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계획에 반발해 일련의 경제적 보복 조치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정부가 항공사들의 한국 전세기 운항을 불허하면서 춘절(春節) 연휴 중국인 관광객의 방한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돼 국내 유통업계 등 관련업계의 피해가 커질 것이란 우려가 있다.

중국은 그간 한류를 통해 인기를 얻은 유명 연예인들의 방송 출연을 금지하고, 국내 기업에 대한 전방위 세무조사를 진행하는 등 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 대응에 나선 바 있다.

일본의 이번 조치와 같이 중국은 아직 사드 문제에 따른 금융 협력 관계 중단과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향후 양국 간 갈등이 본격화하면 현재 진행중인 한ㆍ중 통화스와프 만기 연장 협상에도 영향을 주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4월 바하마에서 열린 미주개발은행(IDB) 연차 총회에 참석해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 인민은행장과 만나 통화스와프 만기 연장 협상에 합의했다.

중국과의 통화스와프 만기는 2017년 10월까지로, 규모는 3천600억위안(약 61조원)이다.

중국과의 통화스와프는 2009년 4월 1천800억위안 규모로 처음 시작한 이후 2011년 11월엔 규모를 3천600억위안까지 확대했다.

◇묘수 없는 정부, 당황한 기색만

일본 정부가 소녀상 설치 문제를 들어 통화스와프 협상 중단을 통보한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문제삼아 동일한 수준의 금융 보복 조치에 나서더라도 우리 정부가 대응할 수 있는 대책은 마땅치 않다.

유일호 부총리는 전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외교당국이 앞장서야 한다"면서도 "범부처적 대응을 위한 팀을 구성하면 이슈가 오히려 부각될 가능성이 있어 걱정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가 주요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은 대외 불확실성 확대로 금융시장, 특히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돼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경우를 대비해 '안전판'을 마련해 두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중국과 일본 등과의 양자 통화스와프 체결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해 왔다. 일본과의 통화스와프 재개 협상을 추진한 것도 우리 정부가 먼저 제안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작년 8월 말 유일호 부총리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과의 회담을 계기로 통화스와프 논의를 재개하기로 합의하면서 "여러 나라와 많이 하면 할수록 불확정성을 줄일 수 있기에 확대한다는 방침을 지속해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4개월여만에 양국 간 외교적 갈등 문제가 불거지면서 협상을 중단하게 되자, 실무부처인 기재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기재부 고위 당국자는 "정치적 문제로 양국 간 통화스와프 재개 협상이 중단된 것은 유감"이라면서도 "호혜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정경분리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상대가 논의를 중단하겠다고 하는 마당에 우리가 다시 먼저 나설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의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은

이달 20일 공식 출범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우리에겐 리스크 요인이 되고 있다.

강력한 자국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보호무역주의의 기치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전면전을 펼칠 경우 우리에 미치는 여파가 적지 않을 수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영향권에서 비껴갈 수 없을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어 우려된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낙관하는 분위기다.

유 부총리는 전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이 중국을 바로 건드리지 않고 정치적 고려로 한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기 위해 기존 지정 요건을 완화하거나 새로운 기준 마련 시 한국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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