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2008년 9월 당시 신제윤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은 뉴욕으로 날아갔다.

당시 우리 경제의 대외신인도를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인 외금환평형기금채권 금리는 8개월 사이에 50bp 이상 오르면서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9월 위기설'이 돌았다.

환율은 치솟고, 국고채 금리는 뛰면서 금융시장의 불안 양상이 확산하자 정부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외환시장 개입에 나서면서 시장 안정화에 진땀을 흘렸다.

이러한 때 정부는 하반기 외평채 차환 발행에 나섰다. 신 차관보는 "외평채 발행에 성공해 9월 위기설이 진짜인지 아닌지 보여주겠다. 성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정부는 외평채 발행을 연기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공포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의 돈줄이 말라 투자자들이 기대 이상의 금리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자금수요가 급하지 않은 상황에서 굳이 높은 금리를 줘가면서 외평채를 발행할 필요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연기냐 실패냐를 두고 말들이 많았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일 열린 기재부 시무식에서 "지금 우리 경제는 대내외 도전들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느냐, 이대로 주저앉고 마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변곡점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위기라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정부가 다시 외평채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이르면 13일 새벽쯤 발행 성공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날 공식적으로 10년 만기의 외평채 10억 달러 발행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부터 정부는 홍콩과 런던 등에서 글로벌 투자자들과 접촉하면서 우리 경제의 상황과 대외신인도가 양호하다는 점을 설명해 왔다.

유일호 부총리는 이번 주 초 미국으로 날아가 월스트리트의 금융 실세들을 만나고, 보스턴의 대형 글로벌 채권투자자들과도 만났다. 12일(현지시간)에는 뉴욕에서 150여 명의 투자자들을 모아놓고 직접 우리 경제 상황을 알리는 한국경제설명회를 주재했다.

사실상 외평채 발행을 위한 준비작업은 모두 마친 상태다. 정부의 외평채 발행 실무자들이 본격적인 프라이싱과 북 빌딩 작업에 착수할 것이란 얘기도 들려오고 있다.

성공 여부는 우리 경제를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시선에 달려있다. 다만, 2008년 위기 때와는 다르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 대선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졌음에도 당시 150bp를 웃돌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50bp를 밑돌고 있다. 달러-원 환율의 변동성은 커졌지만 1,100∼1,200원대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등락을 하고 있다. 'A'였던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은 'AA'로 크게 올랐다. 지표만으로 보면 나쁘지 않다.

2008년처럼 글로벌 유동성이 말라 투자자들이 돈줄을 죄고 풀지 않는 상황도 아니다.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로 글로벌 채권 금리의 상승 추세가 강화될 조짐이지만 비교적 우량채권으로 꼽히는 한국물을 꺼릴 정도도 아니다.

지난해 말 국책은행과 시중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해외에서 글로벌 채권을 발행할 당시 북 빌딩에 몰린 자금은 발행 예정액의 6∼8배에 달했다.

다만, 우리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은 성공 여부에 더해 가산금리에도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7%로 제시했지만 2% 초반까지 낮아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정부는 적극적 재정정책을 통해 성장률 저하를 막겠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 막아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1천300조 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우려도 크다. 실제 이날 열린 한국경제설명회에서 투자자들은 우리 정부의 가계부채 대응책을 묻는 말을 던지기도 했다.

pisces73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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