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 유럽중앙은행(ECB)이 위기에 빠진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구할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한다면 얼른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다. ECB가 이번 주 예정된 통화정책 회의(8월 2일)에서 실망스러운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ECB가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를 직매입해 위기탈출을 도울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시장의 '희망 사항'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지난주 런던 연설에서 "유로를 지키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그의 발언을 계기로 시장에서는 ECB가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 매입을 시작할 것이라는 기대가 현실로 바뀔 것으로 확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장은 드라기 총재의 말 중에 중요한 팩트 하나를 놓쳤다.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말 앞에 있는 'ECB가 위임받은 권한 안에서'라는 구절이다.

드라기 총재는 "ECB가 위임받은 울타리 안에서만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셈이다. '못하는 것 빼고 다 하겠다'는 식의 수사적 표현이다. 마치 일상생활에서 우스갯소리로 하는 '모르는 것만 빼고 다 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말이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조너선 로이네스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은 (작은 말에도 감동하는) 풋내기 연인들처럼 모든 조치를 하겠다(Whatever it takes)는 세 마디 말에 열광했다. 그러나 시장은 그 앞에 놓인 'ECB의 권한 안에서(within our mandate)라는 세 마디 말은 놓치고 말았다. 아니면 그 말을 그냥 무시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 시장에서 ECB에 기대하는 대책으로 올 2월 이후 중단된 국채매입 프로그램(SMP) 부활이 거론된다. ECB는 2010년 이 프로그램을 한시적으로 가동해 유로존 부실국의 국채를 매입했다. 그러나 올해 2월 이후 이 프로그램은 중단된 상태다. 이 프로그램이 부활하면 ECB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를 시장에서 매입할 길이 열린다.

SMP의 부활은 ECB 권한 밖의 임무다. 이 프로그램이 부활하려면 유로존 회원국의 정치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독일의 반대를 극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독일중앙은행은 이 방안에 결사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ECB의 드라기 총재가 금명간 옌스 바이트만 독일중앙은행 총재를 만나 설득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최근 '유로존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는 공동성명을 냈는데 이것을 SMP의 부활로 해석할지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원론적 뜻이 담긴 외교적 수사인지 정말로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 매입을 시사한 것인지 전문가들의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SMP 부활과 같은 중요한 결정을 휴가지(메르켈 총리는 3주 일정으로 휴가에 들어갔다.)에서 전화 협의로 결정한다는 게 EU 정책결정의 전통과 방식에 걸맞지 않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EU는 관례적으로 여름휴가가 있는 시기에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는다.



# SMP의 부활 말고도 기준금리 인하와 3차 장기대출프로그램(LTRO)도 실행 가능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ECB와 별도로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이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를 매입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고 유로안정화기구(ESM)에 은행 면허를 부여하는 방안까지 다양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대책 중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은 LTRO다. 아무런 장벽이 없고 ECB 자체 판단으로 쉽게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책의 약발이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ECB가 이번 회의에서 LTRO만 선택한다면 시장은 큰 실망과 혼란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준금리 인하는 ECB 입장에서 부담이 크다. 7월에 이미 금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연속 금리인하에 대한 부담이 만만찮다. ECB가 0.75%인 기준금리를 이번에 또 내리면 유럽은 사실상 제로금리 시대에 들어서게 된다.

그나마 SMP 부활보다 금리인하가 부담이 적기는 하다. SMP가 어렵다면 8월 금리 인하도 대안으로 꼽힐 수 있다.

EFSF의 스페인ㆍ이탈리아 국채매입 방안은 난항이 예상된다. 독일의 반대가 가장 큰 장벽이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29일 독일 일요판 신문인 빌트 암 존탁과 인터뷰에서 유로존 구제기금의 스페인 국채 매입 가능성을 일축했다.

ESM의 은행 면허 부여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대책이지만 회원국의 합의가 필요하다. 전체 회원국이 모여 의논할 만한 여건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ESM의 은행 면허 안건은 아직 먼 길을 가야 한다. (국제경제부장)

jang73@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