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 빈 수레는 요란했다. 예상했던 대로 유럽중앙은행(ECB)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통화정책 회의 전 '나를 믿어달라'며 모종의 대책을 예고했던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체면을 구겼다.

시장은 '액션(행동)'을 기대했으나 그는 '플랜(계획)'만 제시했다. 그 계획조차도 예고한 내용을 반복하는데 그쳤다.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는 과정에 버티고 선 장애물도 여전하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짖는 행위 자체가 자신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이지 실제로 물겠다는 의지는 없기 때문이다. 경고가 크면 클수록 실행에 옮겨질 가능성은 작아지게 마련이다.

드라기 총재를 비롯한 ECB 당국자들은 회의에 앞서 발언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으나 정작 경고를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다. 앞으로 드라기 총재의 말을 시장이 얼마만큼 신뢰할지 걱정된다. 이번 일로 ECB의 신뢰성에 흠집이 났기 때문이다.



# 드라기 총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건 독일의 반대 때문이다. 이는 유럽연합(EU)의 정치적 구도와도 관계가 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취임 이후 EU는 '독일 대 反독일' 구도가 확연해 졌다.

EU 4대 강국 중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가 힘을 합쳐 한목소리를 내고 독일은 이에 반대하는 모양새다. 6월 말 막을 내린 EU 정상회의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프랑스-스페인-이탈리아 연합전선에 밀려 많은 부분을 양보했다.

ECB 통화정책 회의에서 가장 큰 쟁점이었던 국채 매입 논란도 프랑스 등 3개국이 주도하고 독일이 버티는 형국으로 진행됐다. 독일의 강력한 반대로 ECB의 국채 매입은 행동에 옮겨지지 못했지만,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세 나라는 앞으로도 이를 계속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위기가 지금보다 더 심각한 수준으로 간다면 독일도 한발 물러서는 선에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 국제금융시장에서 보는 ECB 변수는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시선은 미국으로 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이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9월 12일 열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두고 3차 양적완화(QE3)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정치 일정과 경제상황을 고려하면 9월 회의가 가장 적기라는 이유에서다.

미국은 11월 6일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대선 전까지 연준은 두 번의 통화정책 회의를 열 수 있다. 그러나 10월 회의는 대선 2주 전인 23~24일 예정돼 정치적 부담이 크다.

9월 회의를 그냥 넘기면 연준은 연말까지 QE3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12월 11일 회의가 있지만 큰 기대를 걸기 어렵다. 연준은 통상 연말 마지막 회의에서는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미묘한 시점에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버냉키 의장 6~7일 두 번의 공개연설을 한다. 30일에는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이 집결하는 잭슨 홀 회의가 예정돼 있다.

버냉키 의장이 경기부양책과 관련해 어느 정도 수위의 발언을 할지 시장은 지켜보고 있다. 버냉키 의장은 한번 내뱉은 말은 그대로 지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요란한 빈 수레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버냉키 의장은 2010년 2차 양적완화(QE2)를 결정할 때 8월 잭슨 홀 회의에서 그 계획을 밝히고 11월 FOMC 회의에서 최종 결정했다. 시장참가자들은 이번에도 그와 같은 비슷한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9월 FOMC를 앞두고 연준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이유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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