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단기 기준금리 대체 방안 논의를 보고 있노라면 금융당국자들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근본적 고민보다는 시간에 쫓겨 면피용 하책(下策) 찾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최근 양도성예금증서(CD) 담합 관련 논란이 생기자 최근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부랴부랴 민간 위원들과 의견을 종합했다는 핑계를 대면서 기준금리로 단기 코픽스(Cost of Funds Index)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단기 코픽스라는 게 뭔가? 3개월 미만 정기 예금, CD 91일물, RP 91일물 등 단기 조달 금리를 가중 평균해 구성한 것으로, 말 그대로 과거의 금리를 가중 평균한 박제(剝製) 금리일 뿐이다.

금리이론에서 볼 때 단기 기준 금리는 죽은 금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금리여야 하며,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의 기대 가격이 반영된 생물(生物)이어야 한다. 코픽스를 기준금리로 삼는다는 말은 죽은 금리를 평균해 현재와 미래의 지표금리로 삼겠다는 얘기다.

코픽스는 기본적으로 금리 고시에 따른 사후적 시차가 생기는 금리다. 현재 이 금리는 은행들이 전월 조달금리를 가중 평균해 매달 15일마다 고시해 금리 시차가 한 달 가까이 된다. 이번에 3개월물 등 단기 코픽스 개발은 고시 단위가 짧아진다고 하지만 시간 지체가 일어나는 건 매 한 가지다. 이런 일종의 금리 합성물(Synthesis)을 단기 기준 금리로 정하게 되면, 자금시장(Money Market)은 웃지 못할 순환 논리의 모순에 빠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완전히 개방된 시장에서 각종 금리를 기초로 한 현물 및 파생상품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고려하지 않은 점도 우려를 키운다. 글로벌 표준에 부응해야 하는 점에서 한국에서만 고안된 희한한 금리를 내놓는다면, 그동안 단기 기준금리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한 국가였던 게 부끄러운 일이었는데 앞으로도 국제 금융시장에서 또 다른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런 고육책을 내놓게 된 배경에는 우리 금융당국이 영국의 리보(LIBOR) 금리의 담합 사실 자체에만 겁을 먹고 리보금리 결정 메커니즘 상의 모든 장점을 외면해 버렸다는데 근본 원인이 있다. 은행간 단기금리의 쿼트(Quote) 능력을 활성화해 머니 마켓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근본적이고 장기적 과제는 내버려둔 채담합이라는 비판을 피하는 데만 급급한 모양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리보 담합의 여지를 걸러주는 장치를 강화해 보완하는 방법 쪽으로 한국도 글로벌 시장과 표준화에 발맞춰 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코리보(KORIBOR) 금리가 은행 간 거래를 할 때 지급할 의향이 있는 '호가'에 머물지 않고 실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주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이는 당국이 마니마켓의 관치(官治)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은행들도 스스로 자금과 금리 예측 실력을 키워야 가능한 일이다.

물론 이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은행들이 언제까지고 원화의 단기 거래 시에 자신 있게 '사자' '팔자'금리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자금시장의 선진화는 요원하다.

금융당국자들은 단기 기준금리를 만드는 일을 시장의 기준점을 잡는 백년대계를 만든다는 차원에서, 코픽스라는 '생뚱맞은 금리'로 일시적으로 면피하기보다는 기초를 놓는 어려운 길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과 공정위, 민간 전문가들이 기간 안에 숙제하듯 일시적 땜질 대책을 내놓을 게 아니라 국가 장기 프로젝트로 다시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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