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달러-원 1천157.40원(0.7원 하락), 국고채 5년물 연 1,995%(0.8bp 하락), 코스피지수 2097.35(0.3% 상승). 2017년 3월10일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던 날 국내금융시장의 주요 지표들이다.각 지표들의 변동성만 보면 평온한 날로 평가된다. 국가 최고의 존엄이 파면 당하는 대형 이벤트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얄미울 정도였다.

일부 금융 전문가들은 시장 지표의 충격이 크지 않은 탓에 왜 우리가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한 반성이 부족한 것 같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한국의 금융시장이 엄청난 스트레스 내성을 가진 것 같지만 그만큼 역동성이 떨어졌다는 방증이라는 자조도 이어졌다.

◇ 주가로 본 박전대통령의 성적표

당장의 국내증시 변동성만 보면 위안이 된다. 대내외 충격에도 너무잘 견디고 있어서다. 박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 글로벌 주요 증시와 비교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박 전대통령이 취임한 다음날인2013년 2월26일 2000.01 이었던 코스피지수는 지난 주말 기준으로 2097.35를 기록했다. 만 4년이 넘도록 100포인트도 못 오른 셈이다. 같은 기간 이웃 나라 일본의 닛케이 225지수는 11,253.97에서 19,604.61로 대약진에 성공했다. 미국의 다우지수는 13,784.17에서 21,169.11로 빅랠리를 펼치며 글로벌 경기 회복을 견인하고 있다.

국내 증시의 시가총액 비중 가운데 2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는 153만원에서 200만9천원까지 뛰었다. 나머지 종목들은 뒷걸음질쳤다는 의미다. 5년전 이맘 때 34만6천500원까지 기록했던 현대중공업은 지난주말 16만6천500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조선업 구조조정의 때를 놓친 결과다. 한류 열풍을 주도하며 한 때 45만5천500원(2015년 7월2일)까지 기록한 아모레퍼시픽은 27만2천원으로 미끌어졌다. 정부의 일방통행식 사드배치 결정으로 중국이 한한령을 발동하는 등 보복조치에 나선 데 직격탄을 맞았다.이밖에 포스코 등주요 기업들이 실적 부진에 시달린 결과가 코스피 지수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 정의가 뒷받침되지 않는 성장

주가가 제자리 걸음만 거듭하는 등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진 건 누구의 책임일까. 일차적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의 책임이 크지만 내 탓이오(mea culpa)를 모르는 사회지도층 모두의 책임도 작지 않다. 재벌들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 경제 체질을 약화시켰고 힘 있고 아는 것 많은 사람들은 두눈 감고 자본의 편에 서서 편의를 제공받았다.

참다 못해 국민들이 직접 나섰다. 광장은 시민들로 채워졌고 정의가 뒷받침되지 않는 경제 성장이 더 이상 공동체의 성원을 받지 못한다는 총의를 모아갔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의해 정의는 대통령과 그 주변의 힘있는 자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상식이 확인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파면된 지난 10일이 '4.19' 혹은 '6.29'를 뛰어넘는 기념비적인 날로 기억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동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지 못했던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금융계 등 사회지도층도 이 상황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이번 탄핵사태를 통해 내 탓이오 내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mea culpa mea culpa mea maxima culpa)라는 경구를 가슴에 새기듯 살아가는 교훈을 얻었길 기대한다.(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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