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한국은행이 가계대출 통계 오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통계시스템 기강확립에 돌입했다. 오랫 동안 통계를 편제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확인 절차가 미흡했다는 점, 유관 기관과 소통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한국은행이 강한 문책을 내놓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은은 14일 '상호저축은행 가계대출통계 오류 관련 조치내용에 대한 설명회'를 열고 금융통계부장 교체, 금융통계팀장 직위해제, 경제통계국장과 담당 과장 엄중 경고 조치로 책임을 물었다.

특히 직위해제는 직위를 박탈하고, 사실상 한 직급 강등되는 조치로 한은에서 무거운 징계에 속한다.

한은이 해당 직원을 직위해제한 경우는 지난 2015년 부산본부의 화폐도난사건 이후 처음이다. 당시 한은은 부산본부장과 화폐제조장 담당 팀장을 직위해제했다. 부산본부 화폐 도난사건은 부산본부에서 2년 넘게 근무해 온 외주업체 직원 김모씨(26)가 손상화폐 재분류장에서 5만원권 1천장을 훔쳤다가 적발된 사건이다.

한은이 이처럼 가계대출 통계 오류에 직위해제 조치를 단행한 것은 가계부채가 그만큼 중대한 현안이기 때문이다. 가계부채는 최근 제1금융권의 대출 규제로 제2금융권으로 번지는 '풍선효과'를 보이고 있다. 한은은 물론 금융감독당국도 비은행 가계대출 통계에 주목하고 있다.

◇통계 신뢰도 훼손에 정책 부담 커져

가계부채는 한은의 향후 금리 대응여력을 좌우할 만한 핵심 지표로 꼽힌다. 한은의 금리 인하는 가계부채 증가 우려와, 금리인상은 가계부채 상환부담 증가와 엮여있다. 가계대출 통계가 한은의 정책 방향과도 맞물려있는 셈이다.

최근 가계부채 문제의 무게 중심은 취약차주 쪽에 집중되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가계부채 총액과 취약차주의 채무부담을 누차 언급해왔다.

이 총재는 2월23일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를 연 1.25%로 동결한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GDP(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총량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며 "가계대출은 은행의 경우 2개월 연속 증가 규모가 축소했지만 비은행 가계대출은 예년을 상회하는 높은 증가세를 보인다"고 말했다.

'정확하고 신뢰성 있는 통계'를 내세워 온 한은의 통계오류는 정책 방향에 대한 신뢰도마저 해칠 수 있다. 한은은 오는 23일에 첫 거시금융안정상황 점검회의를 앞두고 있다. 통계 오류에 따른 부담이 더욱 큰 시점이다.

이주열 총재는 이번 통계오류 사태에 크게 실망하며 "이번 통계 오류는 한은이 소중한 가치로 지켜온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는 사건 발생의 경위를 조사하는 한편 통계시스템을 재점검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한은은 "통계편제 시 적용하는 체크리스트에 미흡함은 없는지 점검하고, 보완하는 등 내부체크시스템도 재정비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가계부채 해법 근간인 '통계' 엇박자

이번 통계오류로 저축은행 가계대출이 단숨에 9천775억원 증가했는데도, 한은은 이 통계수치에 다소 안일하게 대처해 지적이 일었다. 가계부채 대책 마련 근간이 되는 통계에서 당국간에 엇박자가 나고 있었다는 점도 여실히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저축은행 가계대출 통계에 '영리 목적의 가계대출'을 새로 포함하기로 한 것은 중대한 변화다. 그럼에도 금융감독원과 저축은행중앙회가 통계 변화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은과는 긴밀한 교감이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제2금융권 가계대출 규모는 1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취약가구의 대출과도 연관돼 있어 더욱 민감한 부분이다.

'영리목적의 가계대출'을 새로 포함하기로 결정한 후 저축은행 가계대출 수치가 늘었지만 후속 조치는 없었다. '영리목적의 가계대출'은 영리목적의 영농자금 등을 말한다. 저축은행 가계대출이 실제로는 5천83억원 증가한 것이라는 해명이 나왔으나 이 역시 대출이 증가했다는 점에서 별반 다를 바 없다.

한은은 "이번 통계 혼선에는 저축은행중앙회와의 소통 부족도 중요 원인"이라며 "향후 저축은행중앙회를 비롯한 유관기관의 정기 교류를 확대하고, 통계 편제 관련 정보교환을 늘리는 등 소통,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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