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창헌 기자 =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한국은행이나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은 내부에선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두고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박 당선자는 오랜 기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활동한 경험으로 중앙은행의 책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런 점에서 차기 정부에서는 한은의 역할론이 더욱 강화될 것이란 기대가 나오는 동시에 독립적인 정책 집행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박 당선자가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사실상의 경제분야 공약 1순위로 제시한 점도 한은의 어깨를 무겁게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해 6월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다. 기재위 소속으로 참석했던 박 당선자는 가계부채 문제가 금리정책의 실기에서 비롯됐다며 한은과 김중수 총재를 강하게 질책한 바 있다.

당시 그는 "가계부채 문제는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금리정상화 타이밍을 늦추지 말았어야 하는데 한국은행의 뒤늦은 금리정책이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켰다는 얘기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은은 금리인상 시기를 늦춰서 스스로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다고 볼 수 있다"며 "뒤늦게 금리를 올리자니 서민가계 파탄과 금융기관 부실이 걱정되고 저금리를 유지하자니 물가가 오르고 가계부채가 더 증가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힘든 상황"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7월 이후 기준금리를 2회에 걸쳐 50bp 인하했다. 경기 침체 장기화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 크지만, 가계의 이자상환 부담을 줄여주려는 취지도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한은이 가계부채 총량이 늘어나는 것보다는 대출의 질이 악화하는 것을 더 우려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해 320만명의 금융채무불이행자를 구제하고 고금리 부담을 덜어주겠다고 선언한 박근혜 당선자로서도 한은의 완화적인 정책 방향은 반길만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한은 안팎에서 걱정하는 것은 새 정부의 통화정책에 대한 직·간접적 압박이 세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구성 초기 가계부채 해법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한은에 협조를 구하는 일이 많아질 것이고, 이는 자칫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압박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박 당선자가 그동안 한은의 다분히 수동적인 정책 대응을 비판해왔던 대표적 정치인이었다는 점도 이런 우려를 키우는 부분이다.

박 당선자는 지난해 9월 열린 한은 국정감사에서 "집값이 크게 올라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진 게 한은의 유동성 관리가 잘 안 된 것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며 "(한은법 개정으로) 권한이 주어졌다고 잘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실천능력과 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더 많은 사안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정책 대안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고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등과 유기적인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은 집행부는 박 당선자의 어록을 중심으로 정책 대응 방안을 재점검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일 방침이다.

c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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