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곽세연 기자 = 약 550조원의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주요 상장사의 대주주 지위를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공단이 주주총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이 주주가치보다는 삼성그룹을 위한 특혜라는 지적이 작년 연말 특검 수사로까지 이어진 만큼 국민연금이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17일 현대차 정기 주총에서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기권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정몽구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에 반대를 의결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이날 열린 현대차 주총에는 사내, 사외이사,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등의 안건이 상정됐다. 현대차그룹 오너인 정몽구 회장을 사내이사로 3년간 재선임하는 안건이 특히 관심을 끌었다.

일부 주주가 정 회장의 재선임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결정이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무난히 재선임됐다.

국민연금은 현대모비스에 이어 현대차 지분 8.02%를 보유한 2대 주주다.

국민연금의 현대차 의결권 행사가 관심을 끈 것은 유독 반대표를 많이 던졌던 국민연금과 현대차의 10년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정몽구 회장 재선임 안건만해도 지난 2008, 2011년 두 차례나 반대 의사를 밝혔다. 주주가치를 훼손한 이력을 들었다.

2007년에는 업무상 배임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가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지만 국민연금은 이듬해인 주주총에서 주주 가치를 훼손했다고 평가했다. 2011년에도 주주가치 훼손을 들어 반대표를 유지했다가 2014년에 찬성으로 돌아섰다.

정 회장 외에도 국민연금은 2010년과 2013년 현대모비스 주총에서도 반대표를 던졌다. 가장 최근으로는 작년 3월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 이사 재선임안에 반대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 올해 주총에서 현대차는 미르 재단 출연에다 KD코퍼레이션 특혜 등의 의혹까지 받은 상황이었다.

앞서 국민연금은 국정 농단 사태에 연관된 포스코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중립'을 행사했다. 포스코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은 권오준 회장의 연임과 관련,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까지 열어 다른 주주의 찬성, 반대 투표비율을 의안 결의에 그대로 적용하는 중립투표를 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은 포스코 지분 10.88%를 보유하고 있다.

당시 국민연금은 포스코의 포레카 매각과 관련해 제기되고 있는 의혹과 관련해 "객관적 사실(법원 판결, 검찰 기소 등 국가기관의 판단)에 해당되지는 않지만, 사회적 논란 확산으로 기업가치 등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있어 중립으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는 미르, K스포츠재산 설립 출연과 현대글로비스 일감 몰아주기 의혹 등으로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의 현대차 사내이사 재선임 건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현대모비스 사내이사 연임 안에 반대를 권고했다.

국민연금의 소극적 의결권 행사에 비난의 목소리는 더 커지게 됐다.

국민연금 기금운용 관계자는 "기업마다의 경영 여건·사업 환경 등이 다양하고 투자자마다 투자 여건이 다른 바를 감안할 때, 반대 행사 여부만을 두고 적극적 또는 소극적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중립이나 기권과 같은 이런 결정은 기금운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한 것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기금운용에 책임이 있는 만큼 수익률 제고, 자금을 맡긴 고객의 목소리를 대변해줘야 하는데 민감한 사안에 중립과 기권을 의결한 것은 책임회피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아무래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여파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sy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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