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기자 = 미국 재무부의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을 보는 외환시장과 외환당국의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외환당국은 최악의 경우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더라도 '이미 가 본 길'이라는 입장인 반면 외환시장은 '가보지 않은 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시장 "바스켓 환율시절 경험 믿다가 낭패 볼 것"

한 외환시장 참가자는 23일 "환율조작국 지정은 과거 1980년대의 일"이라며 "그 때는 환율제도가 달랐기 때문에 급락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 1988~1989년, 세 차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됐다.

1980년부터 1990년 2월까지 우리나라는 복수통화바스켓이라는 환율제도를 실행했다. 국제통화기금(IMF) SDR의 대미달러 환율이 SDR바스켓과 주요 교역상대국인 미국, 일본, 서독, 영국, 프랑스 통화의 미 달러대비 가중평균한 환율로 만든 독자적인 바스켓, 정책 조정변수인 실세 반영장치 등에 의해 환율이 고시되던 때였다. 이에 한은이 당일의 집중기준율을 결정해 고시했다.

환율조작국 지정 이후인 1990년 3월부터는 시장평균환율제도로 바뀌었다. 초기에는 일일 환율변동제한폭을 기준환율 중심으로 상하 0.4%로 설정했다.

1980년대에는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더라도 환율제도를 바꾸는 조치로 대응할 수 있었다. 실질적인 외환시장 영향은 거의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1997년 12월 이후 우리나라는 자유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시장의 자율적인 수급에 의해 환율이 결정된다. 외환당국이 변동폭 조절을 위한 스무딩오퍼레이션을 하고 있지만 대외 변수가 크게 작용하면 환율 변동폭이 확대될 여지가 있다. 환율조작국 지정에 따른 원화 절상을 기대한 역외투자자들이 달러 매도에 집중 베팅한다면 환율 폭락도 가능한 셈이다.

◇당국 "제재조치 알고 있는 것 만큼 위협적이지 않을 것"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일 경제관계장관회의 이후 "환율 변동성이 너무 크지 않으면 원화 강세 자체가 큰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앞서 주요20개국(G20) 회의 이후에도 환율조작국 가능성에 대해 "안가본 길은 아니다. 다시 가보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답한 바 있다.

정부와 외환당국은 향후 환율조작국 지정이 되더라도 경제 제재조치 면에서 우리나라는 해당 사항이 많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 현재 교역촉진법에 따라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6개국 중 한 곳이다.

미국 교역촉진법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1년간 양자협의를 거친 후 시정이 안될 경우 ▲대외원조 관련 자금지원 금지 ▲정부의 조달계약 체결금지 ▲IMF협의시 추가적인 감시 요청 ▲무역협정 개시여부 평가시 고려 등의 조치를 두고 있다.

외환당국은 이런 제재조치에 한국이 직접적으로 해당하는 사항이 많지 않고, 규모도 적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재정정책을 확대하고, 향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경우 달러화도 강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서봉국 한국은행 국제국장은 전일 연합인포맥스 글로벌 금융시장전망 컨퍼런스에서 "우리나라는 미국 정부 조달계약 체결 규모가 약 12억달러로 규모가 적고, IMF 협의시 추가 감시 요청 역시 지금도 환율에 대해 자세하게 논의하고 있어 제재조치는 알고 있는 것만큼 위협적이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 국장은 "환율조작국 지정시 달러-원 환율 하락을 초래할 수 있지만 장기 달러 강세요인도 많아 예상하는 것과 실제가 조금 다를 수 있다"고 언급했다.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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