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정부와 채권단이 좌초 위기에 놓인 대우조선해양에 2조9천억 원의 신규 자금 투입과 출자전환, 만기연장 등 총 6조7천억 원에 이르는 정상화 방안을 23일 내놨다.

계획대로 유동성 지원이 원활하게 이뤄진다면 급한 불을 일단 끌 수 있지만, 자칫 틀어진다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동성 지원 없으면 최악의 경우 도산 가능성

당장 내달 21일 만기가 돌아오는 4천400억 원의 회사채를 상환할 자금 지원이 없다면 대우조선은 사실상 부도 상태에 빠지게 되고 도산의 길을 걷게 된다.

매우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2015년 10월 결정한 4조2천억 원의 유동성 지원 방안에 따라 아직 추가로 지원할 수 있는 자금이 4천억 원 정도 남아있다.

문제는 4월 이후다. 7월 3천억 원, 11월 2천억 원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고, 내년에만 6천100억 원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만기도 예정돼 있다.

4월 만기도래 회사채를 막기 위한 자금만 지원하면 결국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정부가 주장하는 이유다.

추가 유동성 지원이 없어 대우조선이 도산 상황으로 갈 경우 협력업체 1천300여 곳의 연쇄도산이 불가피하다. 조선산업 붕괴는 물론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도 가늠하기 어렵다.

정부와 채권단이 추산한 결과에 따르면 대우조선이파산할 경우 국가 경제 손실액은 무려 59조 원(2016년 기준)에 이른다.

건조 중인 선박에 이미 투입한 원가와 금융권 대출 등 금융시장 손실액을 포함한 즉각적인 손실 금액만 53조4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금융시장이 안게 되는 부담은 만만치 않다. 대규모 선수금 환급청구(RG 콜)와 추가 충당금 적립 부담은 최대 14조 원에 이르게 돼 채권단의 손실은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늘어날 수 있다.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로 들어가면 신규 수주는 중단되고, 신규 자금도 막히면서 이미 수주한 선박을 건조할 수조차 없게 된다. 대우조선의 수주잔량은 114척에 이른다.

이렇게 되면 선주는 빌더스 디폴트(Builder's default)를 발동해 건조계약을 취소하고, RG를 발급한 금융사에 RG 콜을 발동한다. RG를 발급한 금융사는 즉시 선수금을 돌려줘야 한다.

금융사가 차후 구상권을 행사해 선수금으로 내준 돈을 받아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대부분을 손실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금융사의 건전성은 급격히 악화할 수 있다. 결국, 대우조선은 청산 절차의 길로 가고, 금융사는 막대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 정부, 합의 안되면 P-플랜 즉시 가동

한때 거론됐던 굿(Good)-배드(Bad) 컴퍼니 분할 방식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법원의 강제력이 동원돼야 하는 만큼 사실상의 법정관리와 같은 결과가 도출될 수밖에 없다. 우량 자산만을 걸러내 새로운 기업으로 만들더라도 우발채무를 확실히 걸러내기도 만만치 않다. 불확실성이 큰 셈이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른 법적 구조조정 방안이기는 하지만 손실부담 원칙을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특히 회사채와 CP 등을 보유한 사채권자들을 상대로 한 강제 구조조정이 어렵다.

무엇보다 은행 중심의 구조조정 방식이다. 은행들이 손실을 보더라도 기존 채권을 매각하는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해 채권단에서 빠지면 국책은행이 사실상 대부분의 손실을 떠안아야 할 상황이다. 국책은행의 부실화 속도는 더욱 빨라지게 된다.

정부와 채권단이 온갖 비판에도 대우조선 추가 유동성 지원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국책은행이 2조9천억 원의 혈세를 투입하겠으니 시중은행과 사채권자도 고통분담에 나서달라고 요청한 것이다.현 상황에서 여러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는사채권자들이 정상화 방안에 합의하지 않으면 강제적인 법적 구조조정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워크아웃과 법정관리의 장점을 모은 새로운 기업회생 프로그램인 프리패키지드 플랜((pre-packaged plan·P-플랜)을 적용하겠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P-플랜을 적용하면 청산가치에 준하는 대규모 출자전환 등 폭넓은 채무조정이 가능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효과를 줄 수 있다.하지만, 이또한 법정관리 방식을 준용한 것이다.빌더스 디폴트는 물론 협력업체 도산과 유동성 애로, 그에 따른 대규모 실업 가능성, 금융사의 대규모 손실 등의 부작용은 불가피하다.

정부 관계자는 "전액 무담보채권인 회사채와 CP를 보유한 채권자들이 강제력이 있는 P-플랜이 진행되면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이번에 추진하는 자율적 합의 방안을 선택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pisces73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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