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백웅기 기자 = 관가에 '공무원의 정치 중립 의무'의 참뜻이 무엇인지 곰곰이 되새길 기회가 생겼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비롯한 야권의 대선 주자들은 지난 18일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출범식에서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을 약속했다.

이들은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은 당연하다며 공무원의 정당 가입과 정치 후원 등 정치 참여 보장, 정부 조직 개편 시 노조 참여, 공무원 노조 가입 범위 확대 등 노조가 주장한 추진 과제들을 전폭적으로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공무원 정치 참여 허용은 위헌·위법 여지가 큰 이슈다.

헌법 7조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공무원법 65조도 '공무원은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단체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2004년, 2014년 공무원·교사의 정당 가입을 금지한 정당법 22조 등 관련 법률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일선 공무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촛불·태극기 집회가 한창일 당시 '끓는 피'를 주체할 수 없기도 했지만 정치적 중립 의무를 떠올리며 행동을 자제했다고 한다.

정부부처의 한 사무관은 "각자가 나름 표현의 자유나 사상의 자유가 있는 법인데 정치적 중립 의무라는 굴레로 공무원들은 이런 중대한 국면에서 아무런 개인적 목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며 "헌재의 대통령 파면 주문이 나올 때에서야 각자 탄식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일부 선진국은 공무원의 정당 가입 등 정치 활동을 제한적으로나마 허용하고 있다.

영국, 미국, 일본은 공무원의 특정 정치 활동에 대해 법적 제한규정을 두면서도 정당 가입은 허용하고 있고, 대다수 유럽 국가들은 정당 가입뿐 아니라 다른 정치 활동에 대한 특별한 제한규정조차 두지 않는다.

이에 최근 공무원들이 정당에 가입해 정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법률안을 개정하려는 정치권 움직임도 있다.

비난받을 만한 행동이지만 최근 대선 정국을 이용해 정치권 줄 대기에 나선 공직자들이 부지기수고, 과거에도 그런 방식으로 여의도에 입성한 공무원 출신들이 상당수인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또 유력 대선 주자가 공무원의 정치 활동을 허용하겠다는 공약이 인기에 영합한 득표 전략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다만, 애초 왜 공무원의 정치 중립 의무를 명문화했는지 재차 곱씹어보는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한 과장급 인사는 "정권에 따라 정책이 급변하면서 가뜩이나 공무원들이 '영혼이 없다'는 얘기를 듣는데 정치 참여를 허용한다면 정치 바람 따라 날아다닐 판"이라며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는 것은 헌법·법률에 따라 소신 있게 일하라는 뜻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의 대통령제를 두고 제왕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국회에서 막혀 동력을 잃는 경우도 있다"며 "효율성만 따진다면 특정 정당과 일하는 것이 좋을지 몰라도 그것이 꼭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키는 것이 공무원 스스로에게도 롱런(long-run)할 수 있는 울타리 역할을 한다는 현실적인 조언도 있다.

한 고위공무원은 "지금도 대통령이 바뀌면 이전 정권의 치적을 지우는 데에 쓸데없는 행정력을 낭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하물며 공무원들이 정당에 가입해서 특정 정책을 추진했다면 결국 족쇄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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