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호 홍경표 기자 = 국민연금이 대우조선해양 회사채를 넋 놓고 가지고 있었던 것이 드러나면서 리스크 관리 체계에 구멍이 났다는 지적이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280조원의 국내 채권 자산을 들고 있는 국민연금의 리스크 관리 태도도 안일했을뿐더러, 대응 방안도 미흡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대우조선 회사채 보유 금액은 3천900억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의 신용등급이 'BBB'로 하락하고, 3조원의 영업손실로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4조3천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지난 2015년에도 특별한 대책을 발표하지 않았다. 지난해 1조6천억원 가량의 영업손실을 내고 신용등급이 'B'로 급락했을 때도 여전했다.

지난해 3월까지 국민연금은 대우조선 회사채에 3천988억원을 투자했는데 여전히 현재 채권 잔액은 지난해 3월과 거의 유사한 수준이다. 신용등급이 'BB+'에서 이달 'B-'까지 떨어지는데도 손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운용규정에는 국내신용등급 'BBB+' 이상인 채권에만 국민연금이 원칙적으로 투자하도록 하고 있다. 560조원 국민연금의 절반이 채권 포트폴리오인데, 채권에서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국민의 노후자금을 온전히 지켜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국민연금기금운용규정 시행규칙은 국내신용등급이 'BBB+' 아래로 하락하는 경우 운용부서장은 관련 투자증권을 매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향후 보유 여부를 리스크관리위원회 회의에 부쳐야 한다고 규정한다.

국민연금은 대우조선이 투기 등급으로 떨어질 때까지 회사채를 들고 있었다. 이 때문에 기금운용본부 채권운용실과 리스크관리센터가 제대로 위험 관리를 하지 않았거나, 리스크관리위원회가 졸속으로 운영됐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게다가 시행규칙은 보유 투자자산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는 경우 관련되는 각 운용부서장은 관리방안을 리스크관리센터장을 거쳐 본부장에게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국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CIO)부터 국민연금 조직 전반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진단된다. 대우조선은 차입금 증가와 수주대금 지연, 신용등급 하락 등으로 위험신호를 계속해서 보냈으나 국민연금은 이를 묵살했다.

국민연금은 정부, 산업은행 등과 대우조선 사태와 관련해 협의하고자 하는 의향을 내비치고 있으나, 이미 정부가 자율협약과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를 결합한 'P플랜' 카드를 내놓은 상황에서 뒤늦게끌려가는 입장이 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 전주 이전 등으로 국민연금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최순실 사태'를 틈타 실장급 운용역이 기금본부 기밀을 유출하는 최악의 기강해이 사건까지 벌어졌다.

전주 이전으로 운용역이 이탈하자 정부에서는 운용역의 임금을 올려 기금 역량을 끌어올리려고 하지만 외부의 시선은 달갑지 않다. 국민의 쌈짓돈을 걷어 대우조선과 같은 부실기업을 지원하는 기금본부 운용역들의 임금을 인상한다는 것은 온당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일반 자산운용사들도 신용등급이 하락할 경우 신속하게 대응하기 마련이다"며 "560조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이 대우조선 회사채에 대한 기준이 명확히 없었다는 점은 의문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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