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이른바 정치의 계절이 본격화됐다. 경제에 있어 정치는 가장 큰 변수 중 하나이고, 특히 경제불황기에 임박한 이번 대선은 향후 한국 경제를 가늠할 중요한 이벤트라는 견해들이 나온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지난 20일 후보 수락 연설에서 밝힌 키워드 중 하나는 `경제민주화'였고, 이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겠다는 게 연설의 골자였다.

`경제민주화'는 새누리당 만의 공약은 아니다. 민주통합당이나 각 대선 후보군들 역시 제각각 `경제민주화'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주지하는 부분은 다르지만 대부분 국민이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는 빈부격차해소와 양극화문제, 그리고 대기업을 규제하고 중소기업의 입지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이미 19대 국회는 대기업의 순환출자를 제한하는 등의 방식으로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는 모습이다. 또 대형마트의 SSM 규제라든가 통신사와 정유사에 대한 가격인하 압박 등 반시장적 정책들에 정치권과 정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제민주화'의 바람은 주식시장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업종별 규제가 강화되면서 상장사들의 수익 확대에 차질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중소형 상장사들은 반대로 `경제민주화'의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되기는 하지만 대부분 그 논리는 `뜬구름잡는 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민주화'의 사전적이자 공통된 정의는 다수의 이익과 권리가 보장되는 경제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경제적 약자에게 이익이 분배되는 측면이 강조되기 마련이다.

여기서 `경제민주화'의 윤리적인 측면을 봐야한다. 다수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궁극적인 다수의 이익이자 공공의 선인지, 자본주의의 효율적인 메커니즘과 충돌하지 않는지 여부도 살필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필연적으로 공동체 행복에 대한 정의 문제라는 철학적인 담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즈는 `누군가가 갖추어야할 물질 분배의 최저선을 갖추도록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 정의가 있다고 본다. 최저선이라는 것은 개인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 균등을 보장하는 것이다.

좀 더 최근 이론을 보면,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을 인용해 볼 수도 있다. 그의 최신작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What money can't buy)'에서는 재화에 대한 돈에 근거한 가치판단에 회의적인 시각이 담겨있다. 시장(Market)에서 돈으로 매겨지는 가치가 과연 행복을 수반하고 내포하는 측량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경제민주화' 논쟁의 핵심을 연장해 대비해 볼 수 있다.

사실 `경제민주화' 개념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딱 한가지다. 즉, 사회 전체적으로 벌어들일수 있는 `돈'의 총량의 증대를 통해 구성원들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다는 점을 믿을 것인지, 총량보다는 적절한 수준에서의 분배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점에 무게를 둘 것인지로 단순화할 수 있는 문제다.

기업정책 부분만을 놓고 쉽게 해석한다면, 대기업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결국 국민들의 부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결론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과 중소기업과 서민에 대한 지원을 통해 처음 단계부터 많은 사람들의 부를 함께 추구하는 것이냐의 대한 선택의 문제다.

언뜻 여러 정치인들, 특히 대선 주자들이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후자의 측면을 강조하는 듯 싶다. 그렇게 비춰지는 게 표심을 잡기에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회의론을 잠시 접고 보면,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이 표방하는 것은 효율적인 경제운용의 결과다. 가장 효율적인 경제분배를 위해 `분배' 자체를 강조하면서 즉각적인 공감대를 노리기 보다는 `결국엔 잘 분배되는' 정책은 무엇인가,`결국은 모두가 더 행복해지는' 정책이 무엇일까를 더 고민하고 중시해야 할 것이다. (산업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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