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10여 년 전 적립식펀드 열풍에 힘입어 가만히 앉아서도 돈을 벌었던 자산운용사들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자산운용업계가 역대 최대 규모의 순이익을 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딱 빛 좋은 개살구나 다름없습니다. 금융당국의 인가 규제 완화로 운용사 숫자는 크게 늘었습니다. 현재 160개가 넘는 운용사들이 무한 경쟁 중입니다. 이 중에서 흑자를 낸 운용사는 100개가 채 되지 않습니다. 일반 투자자들의 펀드 기피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주식형펀드를 중심으로 공모펀드 수탁고가 쪼그라든 영향입니다. 기관 자금 위주의 사모펀드로 근근이 이익을 내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연합인포맥스는 빠르게 변화하는 투자 환경 속에서 운용업계가 어떠한 생존 전략을 고민하고 있는지 중대형 5개 운용사 최고운용책임자(CI0)와 본부장을 만나 들어봤습니다.>>



(서울=연합인포맥스) 한창헌 김경림 기자 = 주식 전문 운용사로 통했던 한국투신운용에 큰 변화가 생길 조짐이다. 한국금융지주는 작년 말 채권운용 전문가를 한투운용 CIO로 발탁하는 파격 행보를 보였다. 25년 가까이 채권시장에 종사한 정통 채권맨 황보영옥 전 한국투자증권 채권운용본부장이 그 주인공이다.

황보영옥 CIO(상무)는 3일 연합인포맥스와 인터뷰에서 "6개 본부, 1개 부문의 운용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는 만큼 과거처럼 특정시장에 대해 깊이 있는 접근이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이라 생각한다"며 "깊이보다는 넓게 보면서 본부별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운용 시스템 근본부터 바꿔라"

황보 상무는 CIO 선임 초기부터 운용조직 개혁에 방점을 뒀다. 관행화된 선임자 위주의 펀드 운용 체계를 전면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열보다는 실력있는 매니저가 더 많은 펀드를 운용할 수 있는 실리주의를 택했다.

이 과정에서 인적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 운용 성과가 좋지 않은 데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참 매니저를 후선 부서로 배치하거나 운용 권한을 대폭 축소했다.

황보 상무는 "지난해 운용인력들이 일부 이탈한 적이 있는데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중에서 회사의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는 젊은 매니저들이 많았다"며 "유능한 주니어 매니저들이 비전을 가지고 일을 하고 회사가 발전하려면 대대적인 인력 개편이나 펀드 재배분이 불가피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10년 가까이 명맥만 이어왔던 헤지펀드 부문도 올해 초 완전히 정리했다. 대부분 헤지펀드가 그렇듯 글로벌 롱숏 전략으로 성과를 내기엔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국내에서 그나마 성과를 내는 헤지펀드는 대부분 국내 롱숏 전략을 구사하는 곳이다. 헤지펀드 시장이 6조원 수준으로 커졌지만, 수익 규모는 아직 미미한 편이다.

그는 "한투운용 헤지펀드는 글로벌 롱숏 위주였으나 과거 10년 경험으로 봤을 때 성과를 내기 어려운 시장이 됐다. 이보다는 더 잘할 수 있는 쪽에 매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대체투자 신장개업 수준으로 키운다"

한투운용이 잘할 수 있고 앞으로 더 잘해야 할 분야는 대체투자라고 판단했다. 대체투자를 맡고 있는 실물투자본부는 확장의 대상이다.

황보 상무는 "올해 신장개업 수준으로 대체투자 부문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먼저 인력 확충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일부 인력 이탈이 나타나면서 실물투자본부 인력이 20명 수준으로 줄었지만 황보 CIO가 오고 나서 신입사원을 받아 현재 27명까지 늘렸다. 출근 예정자까지 합하면 본부 인원이 32명 수준으로 몇 달 새 10여 명가량 충원됐다.

황보 상무는 "현재 운용업계의 큰 트렌드는 해외투자와 대체투자로 볼 수 있고 이런 시류에 맞춰 실물본부를 확충하고 있다"며 "앞으로 2~3년은 이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실물투자본부에 한해서 보상 체계도 바꿨다. 보수의 일정 부분을 성과급으로 받아가는 증권사 방식의 인세티브제를 도입한 것이다. 부동산 투자 관련 유능한 인력을 대거 영입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황보 상무는 채권 전문가이지만, 그렇다고 채권운용 분야에 당장 큰 변화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CIO로서 본부별 회의에 자주 참석하는데, 채권을 운용하는 FI본부 회의에는 가급적 들어가지 않는 편이다. 매니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그는 "개별 본부에 운용 방향을 일일이 제시해선 안 되고 그럴 능력도 없다고 본다"며 "각 팀장이 운용을 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내 역할이다"고 말했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의 운용 시스템도 많이 다르다고 했다.

채권운용의 경우 증권사가 상대적으로 포지션 변화가 빠른 편이다. 운용사의 채권형펀드는 대부분 기관 자금이기 때문에 벤치마크를 아웃퍼폼하는 데 주력한다. 중기 추세를 놓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부 포지션에 변화를 주는 정도다. 운용 금액도 10조원을 웃도는 증권사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해외채권 투자 비중은 단계적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시장 상황에 맞춰 단위형의 특화펀드를 론칭하는 식이다. 현재 한투운용의 해외채권 운용 자금은 약 9천억원 수준이라고 소개했다.

황보 상무는 "해외채권은 달러표시 중국 채권펀드나 스와프포인트 차를 이용한 단위형 펀드를 내는 등 니치마켓을 파고드는 전략으로 조금씩 해외채권 비중을 늘리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채권 롱돌이의 변신…"중기 트렌드를 따라가라"

황보 상무는 한투증권 채권운용부장과 본부장을 지내면서 채권시장 내 대표적인 '롱돌이'로 통했다. 채권시장의 단기 파동에는 꿈적도 하지 않는 뚝심의 소유자다. 시장 금리가 하락하는 채권 강세장에서 특히나 강한 면모를 보이며 증권사 채권본부 중 최대 수익을 올리는 일도 잦았다.

종합운용사 운용을 총괄하는 CIO로 변신하고서 그의 투자 철학도 확 달라진 느낌이다. 하지만, 그는 오랜 기간 운용 쪽에 몸담으면서 고수했던 철학이 "시장 트렌드를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장기나 단기가 아닌 중기 트렌드를 따라가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황보 상무는 "운용은 시장과 괴리됐을 때 가장 리스크가 커진다고 본다"며 "단기 추세는 따라가기 어렵고 장기 추세는 소설이 될 수 있다. 시장의 컨센서스와 우리 뷰의 괴리가 크지 않은지 수시로 점검하고 중기 추세를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식시장을 언급하면서도 장기나 단기가 아닌 중기 전망 쪽에 포커싱을 뒀다.

그는 "코스피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구체적인 지수대를 논하는 건 의미가 없다. 적어도 올해 안에, 중기로 보면 2분기 또는 3분기 안에 전고점을 돌파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진단했다.

강세장을 전망하는 근거로 기업이익 상향과 글로벌 경기 개선을 꼽았다.

그는 "지난해 국내 상장사 순이익이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했는데, 연초에 내놓은 전망치를 비트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며 "올해는 상장사 순이익이 1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주식시장의 트렌드는 지금의 대형주 위주 장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면서도 5월 대통령 선거 전후로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대형주 중심의 장세에서 순환매 차원의 중소형주나 코스닥시장 강세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의미다.

작년 말 주식시장을 떨게 했던 미국의 금리인상 충격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봤다. 오히려 미국의 통화정책 방향이 주식시장에 모멘텀이 될 수도 있다는 쪽이다.

그는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연내 3번의 금리인상을 예고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오히려 완화적으로 바뀌는 분위기로 작년 말과는 상황이 달라졌다"며 "내년 2월 연준 의장의 교체 시기를 전후로 시장이 크게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있었으나 지금은 트럼프의 의지가 더 중요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c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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