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머저리'는말이나 행동이 다부지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최근 정부가 대우조선해양을 처리하는 모습이 머저리와 빼닮았다. 정부가 조선업 부실 원인에 대해서는 눈을 감으면서도 청산할 경우 피해규모를 놓고 서로 내가 맞다며 부처별로 옥신각신하고 있어서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이외에조선업의회생 가능성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정밀한 전망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 유가 장기 전망도 없는 조선업황

대부분 전문가들은셰일가스 혁명이 부른 저유가에서 국내 조선업 부진의 1차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셰일가스 개발로 촉발된 저유가 탓에 해양플랜트 중심의 한국 조선 사업이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배럴당 100달러 수준이던 국제유가가 40~50달러 수준으로 하락하면서 해양플랜트 계약 해지 통보가 줄을 잇고 있다. 셰일가스 개발 기술이 진화하면서 국제유가는 향후 5~6년간 50~60달러 수준을 넘기기 힘들 것으로 점쳐진다. 유가 반등에 따른 한국 조선업의 반사이익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하지만 조선업황 호전을 장담하는 정부 관료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장기 유가 전망치를 근거 자료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대항해 시대의 종말…중국이 생산하고 미국이 소비하던시절은 끝났다.

해운과 조선 산업이 어려움을 겪게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글로벌 교역량 감소에 있다. 문제는 경기 순환적 요인이 아니라 구조적 요인일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와 세계은행(WB)은 교역량 감소의 첫번째 요인은 글로벌 공급사슬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전에는 제품을 중국 등 신흥국에서 제조해 미국 등 선진국으로 수출하는 형태의 국제분업이 활발해지면서 교역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제 저유가 등으로 신흥국에 진출한 해외의 공장이 미국 등 자국으로 철수(=리쇼어링)하며 교역 둔화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은 2018년부터 석유화학 산업에서도 강점을 가지면서 수입대체 효과를 극대화할 것으로 점쳐진다. 미국이 비닐로 된 라면 봉지도 생산하는 시대가 곧 열린다는 의미다.

셰일혁명으로 미국의 원유 도입 수요도 소멸되면서 교역량은 더 가파르게 줄고 있다. 이를 반영해 2013년 6천100만 CGT(표준 화물선 환산 톤수:compensated gross tonnage) 수준이던 선박 신규 발주 물량이 미국 제조업 부활이 가시화된 2015년 2천600만 CGT에 그치는 등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 전 세계 대부분 배는 2000년 이후 건조된 '최신형'

교역량이 줄더라도 기존의 선박이 노후화되면 신규수주의 희망이 있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2000년 이후 건조된 선박이 많아서다.

글로벌 조선 전문 조사업체인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벌크선은 전체 선복량의 75%가 건조한 지 10년이 안됐다. 한 때 우리 조선사들의 주력이었던 컨테이너선도 전체의 70%가 선령 10년 미만이다. 탱커선도 전체의 60%가 건조한지 10년이 안된 배들이다. 선령 범위를 15년으로 넓히면 컨테이너선은 전체 선복량의 87%, 벌커선은 86%, 탱커선은 83%가 해당된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 노릇을 하면서 물동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2000년대 초반, 이른바 '대항해 시대'에 대부분 건조됐다는 의미다. 대부분 선박의 적정 선령을 30년 이상으로 볼 때 앞으로 10년 이상은 선박 노후화에 따른 신규 발주 수요가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가 대우조선을 지원하려면 최소한 중장기 유가추이, 물동량 추이, 선령 등을 감안한 수주 전망 시나리오라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머저리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다.(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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