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정상화 위한 8조 구조조정펀드 조성

금융채권자 조정위원회서 적정 매각가격 산정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정부가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이 축이 돼 진행해 온 기업구조조정을 자본시장으로 넓혀 판을 키운다.

기업에 빌려준 대출 등의 여신이 부실화하면 채권은행이 자동으로 개입해 구조조정을 주도해 온 방식을 사모펀드(PEF) 등 자본시장의 유동성을 활용해 기업 정상화를 더욱 신속히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PEF 등 자본시장 참여자가 채권은행으로부터 구조조정 기업의 부실채권을 매입함으로써 채무조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신규자금 투입과 사업 구조조정을 통한 기업 정상화도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했다.

금융위원회는 이러한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신(新) 기업구조조정 방안을 13일 발표했다.

다만 현재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이해 당사자 간 채무 재조정 갈등을 겪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등 덩치가 큰 대기업에 대한 기업구조조정이 이 방안에 따라 적용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일단 중견기업 수준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이 방식을 적용해 정상화를 추진하고, 향후 대기업으로 적용 범위를 넓혀가겠다는 입장이다.

◇ '마중물' 기업구조조정펀드, 5년간 8조 조성

정부가 PEF를 기업구조조정에 적극 참여시키기로 한 것은 채권은행 주도의 방식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업의 부실화 전조 가능성에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게 아니라 부실이 확대되고 나서야 메스를 들이대는 채권은행의 보수적 행태로는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주는 구조조정을 신속히 해낼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구조조정 방안의 핵심은 PEF를 구조조정의 핵심 참여자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8조 원 규모의 기업구조조정 펀드를 조성해 부실기업의 채권을 매입할 수 있는 충분한 유동성을 마련하기로 했다.

우선 연합자산관리(유암코)와 정책금융기관의 출자 약정을 통해 1조 원 규모로 펀드를 만들고, 이후 순차적으로 규모를 키워 나갈 예정이다.

모자(母子)형 펀드로 운영되는 기업구조조정 펀드는 모펀드가 자펀드 약정액의 50% 내로 매칭 출자하는 구조다.

모펀드 운용은 한국성장금융이 맡는다. 유암코와 정책금융기관은 최대 2조5천억 원 규모로 참여하며, 나머지 출자는 연기금과 시중은행 등 민간 투자자의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금융위는 이달 안에 기업구조조정 펀드에 채권은행이 재무적 투자자(LP)로 참여할 경우 진성 매각에 대한 검토를 신속히 진행하는 패스트트랙을 마련해 채권은행의 참여를 독려할 방침이다.

사실 그동안 기업구조조정에 PEF가 참여하는 전례가 없던 것은 아니다.

현재 5조2천억 원 규모의 45개 기업재무안정 PEF가 설립돼 있지만, 펀드당 규모가 절대적으로 작아 기업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차원에서 펀드 규모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PEF 투입 구조조정 기업에 1.6조 한도성 여신 공급

정부는 PEF가 투입되는 구조조정 기업에 대한 여신 지원도 원활히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구조조정 기업에 대한 신규자금 지원에 한계가 있으면 PEF의 기업 정상화에도 장애가 될 수 있어서다. 일종의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이다.

한도성 여신은 당좌대출이나 할인어음, 무역금융 등 기업의 상거래 활동과 연계된 여신으로 기업이 정상화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정부는 상반기 내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을 통해 1조6천억 원 규모의 한도성 여신 지원과 보증 프로그램을 운용키로 했다.

부실기업의 채권을 매입한 PEF가 보증 규모만큼 투자자금을 추가로 모집해 산은과 수은에 이를 제공하면, 직접 여신을 제공하거나 시중은행에 보증을 제공하는 형태다.

시중은행들도 상반기 내에 PEF를 통해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기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방해하는 내부 규정을 개정할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그간 부실기업을 정상화하는데 장애가 됐던 한도성 여신을 공급하고, 구조조정 채권가격 등 매각 지연 요인을 제도적으로 개선하게 됐다"며 "기업구조조정 펀드를 통해 채권 시장의 마중물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게 된 만큼 자본시장을 통한 구조조정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실채권 매각가격 혼란ㆍ갈등도 정리한다

부실기업의 채권을 매각하려는 채권단과 이를 매입하는 PEF 사이에 가장 큰 갈등 요인은 채권의 가격 적정성 여부다.

채권은행은 가급적 높은 가격에 팔려고 하고, PEF는 낮은 가격에 사려고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매각이 지연되고 결과적으로 구조조정과 정상화 과정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이러한 양측 간 조정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해지는 사례가 반복됐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안에 '구조조정채권 매각 모범규준'을 제정해 준거 가격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고, '금융채권자 조정위원회'를 만들어 채권가격에 대한 이견과 갈등을 조정하기로 했다.

주채권은행뿐만 아니라 다른 금융채권자나 매수 희망자 누구든 조정위를 통한 매각 조건의 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금융당국은 구조조정 채권의 장부 가격과 준거 가격 간 괴리율 자료가 축적되면 이를 은행별 충당금 적립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데도 활용할 계획이다.

채권금융기관이 보유한 구조조정 기업을 한데 모아 매수자와 매도자를 연계할 수 있는 중개 플랫폼도 구축된다.

정부는 산은과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 중심으로 플랫폼을 구축한 후 시중은행 등 민간으로 이를 확대할 예정이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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