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이미란 기자 =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 금리 급등으로 채권 부문에서 2천억원 가까이 손실을 낸 증권사들이 올해는 '채권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금리 움직임에 따라 증권사의 수익이 요동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중장기적인 수익성에는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1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의 총자산은 지난해 말의 359조원에서 올해 2월 말 384조원으로 늘었다. 총자산은 35조원 늘었지만 같은 기간 국내 증권사의 채권 보유액은 6조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에 증권사의 총자산 중 채권이 차지하는 비중도 50%에서 47%로 줄었다.

증권사들이 이처럼 채권 비중을 낮춘 것은 지난해 말 금리가 급등하며 채권 부문에서 큰 손실을 내고서 채권을 보수적으로 운용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금리는 급등세를 탔다. 국고 3년 금리는 3분기 말 1.24% 수준에서 11월24일 장중 1.811%로 60bp 가까이 치솟았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신용 평가 대상인 국내 24개 증권사가 이 때 채권 부문에서 1천745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했다. 채권 보유 규모가 큰 대형 증권사들은 수백억원대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난해 4분기 국내 53개 증권사의 채권 관련 이익도 25억원으로 떨어졌다. 간신히 손실을 면한 수준으로, 금감원이 증권사의 채권 이익을 구분해서 집계한 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홍준표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증권사들이 지난해 채권에서 손해를 크게 본 후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채권 규모를 줄이거나 듀레이션을 줄이며 금리 민감도를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주가연계증권(ELS) 미상환 잔액이 줄면서 채권 보유를 늘릴 필요성이 작아지기도 했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ELS 미상환 잔액은 64조6천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4조6천억원 줄었다. 국내 증권사들은 주로 ELS나 환매조건부채권(RP) 상품의 기초자산으로 운용하기 위해 채권을 보유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채권 보유 비중 축소로 미국의 금리 인상과 같은 잠재적인 리스크 요인이 증권사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이 작아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증권사들이 채권을 보수적으로 운용하며 중장기적인 수익성은 타격을 받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 연구원은 "증권사들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채권 보유 규모를 줄이거나 듀레이션을 축소하면 리스크는 작아지지만 채권 보유에 따른 이익도 줄어들며 중장기적인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이 채권을 줄이는 동안 금리는 오히려 하락했다. 지난해 11월 1.811%까지 올랐던 국고 3년 금리는 올해 들어서는 지난 1월 1.607%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증권사의 한 트레이딩 담당 임원은 "증권사들이 채권 매수를 망설이면서 단기물 금리 하락의 수혜를 보지 못했을 것"이라며 "금리 하락에 대비해 헤지까지 해놓은 증권사들이 있어 채권 운용 수익을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mr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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