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세계 금융가의 눈이 미국 와이오밍주의 작은 마을 잭슨홀로 쏠리고 있다. 미국과 유럽 통화정책의 미래를 예측할 회의가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캔자스시티 연방은행이 매년 8월 전세계 중앙은행 총재를 초청해 여는 이 회의는 오는 31일부터 이틀간 열린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비롯해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이 회의에 참석한다.

이번 회의에서 금융시장 참가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인물은 버냉키 의장이다. 버냉키 의장이 추가 부양책을 쓸 것인지 알려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냉키 의장보다 ECB의 드라기 총재를 주목하는 이도 꽤 많다. 버냉키 의장은 말을 빙빙 돌리면서 원론적인 제안만 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드라기 총재는 정곡을 찌르는 과감한 발언을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버냉키 의장이 무대의 주연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잭슨홀 무대의 막이 오르면 드라기 총재에게 주연 자리를 넘기고 버냉키 의장은 조연으로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버냉키 의장은 회의 첫날인 8월 31일 연설을 하고, 드라기 총재는 다음 날인 9월 1일 연설을 한다. 버냉키의 싱거운 발언 뒤에 나올 드라기의 '화끈한'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드라기는 무슨 말을 할까 = 드라기 총재는 지난달 말 국제금융시장을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의 입에서 매우 파격적인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드라기 총재는 당시 "ECB에게 주어진 권한안에서 유로를 지키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 한마디는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꺼리는 것으로 유명한 ECB의 이미지를 단번에 바꿨다.

1주일 후에 열린 ECB 통화정책 회의에서도 그는 강력한 지원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ECB의 정책 실천력은 부족했지만 강한 의지력에 시장은 높은 점수를 줬다

이번에도 시장이 버냉키보다 드라기 총재의 입을 주목하는 것은 9월 통화정책 회의를 앞두고 '선물'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ECB가 유로존 위기 해소 대책을 고민하는 가운데 드라기 총재가 또 한 번 '깜짝 발언'을 할 것으로 시장은 기대하는 것이다. ECB 통화정책 회의는 드라기 총재의 연설이 끝난 다음 주(6일)에 열린다.

드라기 총재가 선물을 또 준다면 스페인ㆍ이탈리아 국채 매입에 대한 힌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ECB가 ▲스페인ㆍ이탈리아의 국채를 매입할 것인지 ▲매입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현재 거론되는 금리 상한제와 금리 목표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시장은 주목하고 있다.

ECB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금리가 미리 정해놓은 상한선을 넘기거나 특정 범위를 벗어나면 자동적으로 이 나라의 국채를 매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손발 묶인 버냉키 = 월가는 Fed의 양적 완화(QE3) 가능성을 놓고 매일 다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경제지표가 좋게 나오면 QE3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가 연준 쪽에서 부양책 신호가 나오면 금세 전망을 바꿔 QE3가 임박했다고 호들갑을 떤다.

연준에서는 백가쟁명식의 혼란스러운 분석과 전망만 나온다. 22일 나온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은 부양책의 기대를 높였지만 23일 제임스 블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의 'QE3 불가론'은 그러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버냉키 의장의 교통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버냉키 의장은 이번 회의에서 시장에서 궁금한 것들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은 QE3를 시행할 명분이 별로 없다. 불라드 총재의 말처럼 미국의 경제지표가 부양책을 쓸만큼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연말 대선정국에서 불거진 재정절벽 문제도 부담스럽다. 증세와 예산감축이 동시에 이뤄지는 재정절벽의 충격에 대비해 연준은 QE3 카드를 아껴둬야 한다.

밋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가 공언한 Fed의장 교체론은 그의 운신의 폭을 제한하는 요인이다. 롬니 후보는 QE3를 반대하면서 자신이 정권을 잡으면 Fed 의장을 교체하겠다고 말했다.

버냉키 의장은 자신과 Fed의 정책을 둘러싼 비판 때문에 곤혹스럽다. 그러나 QE3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완전히 차단하기도 어려운 입장이다. 재정절벽만큼 통화절벽도 무섭기 때문이다. 연준이 아무 대책도 준비하지 않고 있다는 신호를 주면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버냉키 의장은 교묘히 논점을 피해갈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미국과 유럽의 경제상황을 장황하게 늘어놓기만 하고 대책은 언급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재정적자 상황과 재정절벽의 위험을 경고함으로써 통화정책에 쏠리는 시선을 분산시키고 의회에 공을 넘기는 방법도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다. 버냉키 의장은 작년 잭슨홀 연설에서도 이렇게 말하며 예봉을 피해갔다.

이번 잭슨홀에서 그의 연설은 아마 이런 내용이 될 것이다. "우리(Fed)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책은 재정정책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의회에서 재정절벽 문제를 빨리 해결해주기를 바란다." (국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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