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곽세연 홍경표 기자 = 국민연금이 대우조선해양 채무조정안에 찬성하면서 지난 2015년 상황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당시회사채 조기 상환권을 보유했지만 이를 행사하지 않아 손실을 키운 까닭이다.

국민연금은 당시 대우조선 신용등급이 'BBB'로 떨어졌음에도산업은행의 요구에 상환권 행사를 쉽게 포기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투자위원회에서 찬성한지 두 달여 만에 특정 기업 편들기를 반복한 셈이다. 삼성물산 사례 등을 감안하면의구심이 커지는 대목이다.

◇ 2015년에 상환권 확보하고도 산은 요청에 무릎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대우조선이 지난 2015년 상반기 3조2천억원 가량의 어닝쇼크를 내고 부채비율이 790%로 급등했다. 당시 국민연금은회사채 조기상환권을 확보했다.대우조선 사채관리계약서 등에 따르면 대우조선의 부채비율이 500%를 넘으면 기한이익 상실로 채권자들에게 채무 상환권이 생겨서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회사채를계속 들고 가기로 결정했다.

산업은행은 국민연금에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 추진 관련 협조 요청'이란 공문을 보냈고, 본격적으로 국민연금을 설득하기 시작했다.국민연금이 회사채 상환을 요청하면 다른 채권자들도 상환해달라고 할 것이며, 결국 대우조선해양이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은행은 국민연금 이사장에게 보낸 공문에서 국민연금이 상환권을 실행해 회사채 기한이익을 상실하면 다른 대우조선 회사채도 문제가 돼 경영정상화 추진 및 채권금융기관의 협조가 더는 불가능할 것으로 설명했다.

또 국민연금이 보유한 회사채의 상환도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해 국민 경제와 보유채권의 정상적인 상환을 위해 조기상환을 포기하라고 종용했다.

국민연금기금운용규정 시행규칙은 국내신용등급이 'BBB+' 아래로 하락하는 경우 운용부서장은 관련 투자증권을 매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향후 보유 여부를 리스크관리위원회 회의에 부쳐야 한다고 규정한다.

결국 국민연금은 리스크관리위원회에서 'BBB'로 하락한 대우조선해양 채권을 보유하는 결정을 내렸다.

◇ 외부 입김 작용했나…타이밍 보면 의혹 투성이

국민연금이 조기상환권을 포기한 타이밍도 의심스럽다. 국민연금은 지난 2015년 7월7일 투자위원회를 열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찬성했는데, 국민연금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8월28일 산업은행의 공문을 받았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공단에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넣은 혐의로 구속됐고, 홍완선 CIO는 투자위원들에게 합병 찬성을 지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 대우조선 지원이 박근혜 정부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것을 고려하면 대우조선 회사채 보유에 정부의 입김이 가해져 삼성물산 합병처럼 기금본부의 독립성이 훼손됐을 가능성이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5년 10월 '서별관회의'에서 대우조선에 4조2천억원의 지원을 약속했는데, 검찰은 홍기택 전 산은 회장을 소환해 부실 우려가 제기된 대우조선을 지원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그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로 재직 중이던 지난해 서별관회의에서 최경환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종범 전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등으로부터 정부의 결정 내용을 전달받았고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연기금 관계자는 "삼성물산 합병찬성 사건 등으로 기금본부의 독립성이 망가졌다"며 "운용에 외부의 입김이 미치지 않도록 시스템 자체를 정비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kp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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