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 쇼핑몰에서 아이디어 상품을 팔아 관련 상품 매출 1위를 기록한 A씨. 하지만 자신의 뒤를 바짝 쫓아온 B씨가 눈에 거슬린다. B씨가 버젓이 A씨의 기술을 그대로 베낀 제품을 팔아 높은 매출액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A씨는 B씨를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해 수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승소했지만, 입증에 성공한 손해액은 고작 6천만원에 불과했다. B씨가 빼앗아 간 매출액과 소송비용을 생각하면 상처뿐인 승리였던 셈이다.

특허권 침해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손해액의 입증'이다. 그러나 특허를 침해한 사람이 유발한 손해 규모를 입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의 2015년 자료를 보면 국내 법원의 특허침해소송 배상액 중앙값이 6천만원에 불과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특허법은 손해액 입증의 어려움을 구제하고자 몇 가지 손해액추정 규정을 두고 있지만, 실효성에는 꾸준히 의문이 제기돼 왔다.

예컨대, 특허법 제128조 제2항은 침해자가 판매한 침해품의 수량에 특허권자의 제품 1개를 팔았을 때 이익액을 곱한 금액을 특허권자의 손해액으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침해자는 결코 자기가 판매한 제품의 수량을 알려 주지 않는다.

법원을 통해 침해자의 매출 관련 문서를 제출하도록 신청할 수 있으나, 침해자들은 법원의 문서제출 명령에 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미 그 상황에서는 관련 문서를 모두 폐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2016년 2월 29일 특허법에 '자료제출명령'이 도입됐다.

이는 기존 민사소송법상 인정되던 문서제출명령에서 진일보한 제도로, 제출명령의 대상이 '문서'에서 '자료'로 확대됐다.

또 제출명령에 불응하는 경우 법원은 제출 대상이 된 자료의 존재뿐 아니라, 그 자료로써 증명하고자 하는 사실까지 인정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자료제출명령이 도입된 특허법 개정 이후 1년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특허침해소송은 여전히 활성화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한 해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집계한 우리나라의 국제특허(PCT) 출원 건수는 중국과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위이고, 국내특허 출원 건수는 16만건을 넘어섰음에도 국내 법원에 청구돼 인용된 특허소송 건수는 93건에 불과했다.

개정 규정의 실효성이 문제되는 것은 침해자가 법원의 자료제출명령에 불응하더라도 위 개정 규정의 적용을 인정받기 위한 요건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이다.

아울러 침해자가 자료를 은폐 혹은 축소하고 나면 자료제출명령에 '불응'한 것인를 판단하기 쉽지 않은 점도 문제다.

이러한 증거 보전의 어려움 속에 지식재산 제도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증거개시(Discovery) 제도는 참고할 만하다.

이는 소송의 쌍방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증거자료를 의무적으로 교환하도록 하는 제도로, 이를 위반할 경우 무거운 책임이 부과된다.

대표적 사례가 바로 지난 2008년경 있었던 퀄컴(Qualcomm)과 브로드컴(Broadcom) 간의 특허소송이다.

이 소송의 증거개시 과정에서 브로드컴이 요구했던 수만개의 이메일을 퀄컴 측 변호사가 고의로 은폐한 사실이 드러났다.

법원은 퀄컴의 비디오 특허에 대해 무효선언을 했을 뿐 아니라, 퀄컴에 대해 한화 약 90억원의 소송비용 지불을 명령했다. 이에 더해 변호사협회에는 해당 변호사의 징계를 요청했다.

지식기반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발명자를 보호하는 제도가 필수적이다.

2016년 개정특허법의 취지는 환영할 만하지만,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할 때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

명실공히 기술 강국이 된 우리나라가 무늬만 특허 강국이 되지 않으려면, 권리자 침해 구제를 위한 다양한 수단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법무법인 충정 엄윤령 변호사)

j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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