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26일 자정이 넘은 시각, 농협은행 본점 대강당은 대낮처럼 밝았다. 이경섭 농협은행장은 그곳에서 마이크를 들고 주요 임원과 부서장, 사무소장, 주무팀장 140여 명 앞에 서 있었다. 대강당에는 케이뱅크와 4차 산업혁명, 디지털 금융을 연신 내뱉는 이 행장의 목소리가 가득했다.

올해 두 번째로 열리는 전략 콘퍼런스는 이번에도 밤늦은 시간까지 진행됐다.

지난 2월 농심(農心)을 활용한 마케팅 전략을 논의할 때도 자정까지 열띤 토론이 이어지더니, 디지털 금융 전략에 대한 논의는 더욱 치열했다. 졸릴 법도 했지만, 이 행장의 질문에 직원들의 서슴없는 대답이 이어졌다.

이 행장은 토론 시간 내내 혁신이란 단어를 여러 번 언급했다. 한때는 디지털과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던 농협은행이지만, 이제는 디지털 금융을 선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직원들에게 상기시켰다.

그는 스마트고지서와 스마트 팜을 농협은행의 대표적인 디지털 금융 성공 사례로 손꼽았다.

스마트고지 시스템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주민세나 재산세 등 지방세를 고지하고 핀테크 간편결제를 통해 실시간 납부가 가능하도록 하는 공공핀테크 사업이다.

농협은행은 지난 3월 애플리케이션 'NH스마트고지서'를 출시했다. 현재는 경기도 지방세만 신청할 수 있지만, 점차 이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스마트 팜은 농사기술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것으로 농협은행은 '스마트 팜 종합자금대출'을 통해 농가당 50억 원까지 연 1% 수준의 저금리 대출을 하고 있다.

이 행장은 "스마트고지서는 금융과 조세, 디지털을 융합한 사례고 스마트 팜은 금융과 디지털에 농업 컨설팅까지 합쳐진 사례"라며 "우리의 정체성과 강점을 살려 시중은행 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융합을 통한 디지털 금융 전략을 농협은행의 맞불 전략이라고 소개했다.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은 인공지능(AI)이나 핀테크, 빅데이터를 활용해 농협은행의 강점이 있는 부분을 특화하겠다는 뜻이다.

반면, 어쩌면 디지털 금융의 대척점이 될 수 있는 사람의 온기를 활용한 마케팅도 꼭 필요한 전략으로 강조했다. 디지털 금융에 소외될 수 있는 고령층과 도심 이외 지역은 농협은행의 주요 고객층 중 하나기 때문이다.

농협은행이 일찌감치 '큰 글 송금' 서비스를 통해 스마트폰 이용에 불편함을 겪는 시니어층 마케팅에 주력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중은행이 영업점을 대폭 축소하며 거점점포 중심의 영업 전략을 선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창구를 찾아 아는 직원에게 상담하길 위한 고령층을 주목해야 한다는 게 이 행장의 생각이다.

그는 여전히 은행은 사람의 온기가 필요한 장소라고 역설했다.

융합을 통한 디지털 금융의 경쟁력 강화와 온기 마케팅을 활용한 금융소외 계층의 확보가 시중은행과의 디지털 금융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트랙 전략이 되리라 이 행장은 자신했다.

토론 시간이 절정에 다다르자 그는 최근 직원들이 가장 우려했던 대우조선 문제를 꺼냈다.

이 행장은 "그간 대우조선이 어떻게 될지를 두고 마음졸이는 직원들이 많았다는 것 충분히 알고 있다"며 "이제는 사태가 진정되고 우리도 충분한 충당금으로 대응하고 있으니 좀 더 미래를 보고 도약해야 할 때"라고 도닥였다.

그러면서 "어려운 시기를 함께한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케이뱅크나 4차 산업혁명 등 새로운 변화 속에서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jsjeong@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