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은행권이 긴장하고 있다.

오는 7월이면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꿈꾸는 초대형 투자은행(IB)들의 등장으로 기업여신 시장에서 이들과 한판 경쟁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자기자본 4조원 이상으로 초대형 IB의 조건을 갖춘 증권사는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한국투자증권 5곳이다.

초대형 IB는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인 회사에 만기 1년 이내인 어음발행 업무 등 단기 금융업무를 허용한 게 핵심이다. 이들은 자기자본의 200% 한도에서 단기 어음을 발행해 절반 이상을 부동산 등 기업금융에 투자할 수 있다.

이들 모두 최대한도까지 단기 어음을 발행한다고 가정하면 기업금융에 투입될 수 있는 돈은 최소 20조원 정도다.

시중은행의 일반 여신 규모를 고려할 때 절대적으로 큰 규모는 아니지만, 기존 여신 고객을 빼앗길 수 있는 은행 사이에선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초대형 IB가 등장하기 전이지만 4조원 이상의 자본금을 자랑하는 증권사들은 이미 대기업에 대한 여신을 늘리는 추세다. 대출 수요가 많은 건설사나 수출업체가 주요 고객이다.

증권업계는 은행 계열 증권사가 아닌 미래에셋대우와 한국투자증권 중심으로 기업여신 영업이 강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이들의 자본금은 저축은행을 뛰어넘는 수준인 만큼, 1 금융을 찾기 힘든 기업들은 증권사를 찾아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미래에셋대우나 한국투자증권은 그간 IB 시장에서 쌓아온 업력을 바탕으로 천억 원대 기업 대출은 손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미 한국투자증권이나 KB증권이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고 있어 그간 상대적으로 부족한 신용을 가진 기업을 공략해 온 지방 은행 등 소규모 금융을 중심으로 경계가 짙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당국의 건전성 규제가 강화된 시중은행은 당분간 추세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특정한 딜에 의지했던 증권사가 기업 고객과의 계약을 장기간 가져갈 수 있는 데 대해선 우려가 컸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그간 증권사의 기업여신 영업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회성인 경우가 많았다"며 "이제 급한 대출은 회사채 발행 등으로 인연을 맺은 증권사를 찾아가는 일이 일반화될 수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증권업계는 은행권의 이러한 우려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증권사가 발행해야 할 어음이 은행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증권사가 선보이게 될 발행 어음은 어음을 소유한 사람에게 이자를 붙여 돌려주는 일종의 예금 상품이지만, 종합금융사의 발행 어음과 달리 예금자보호가 되지 않는다.

이에 고객을 끌어모아야 하는 증권사 입장에선 은행의 정기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선보여야 한다.

1% 중반의 은행권 예금을 고려하면 최소 2%에 가까운 금리를 보장해야 하지만, 초기 고객 확보를 위한 특별판매를 고려하면 기업이 증권사에 바라는 기대 금리는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한 증권사 임원은 "은행보단 높은 금리를 제공해야 하지만, 우리 역시 은행의 순이자마진보다는 높게 남겨야 사업성이 있다"며 "결국 2% 넘는 금리를 제공하되, 이를 어느 기업금융 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끌어 올릴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역시 초대형 IB의 등장으로 은행의 전통적인 영업 환경이 달라지진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초대형 IB를 통해 증권사가 다양한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맞지만, 기존 은행권 시장 논리를 해칠 정도의 전업주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다소 지나치다"며 "증권사 역시 금융투자회사가 할 수 있는 틈새시장을 찾아 기업금융 시장을 공략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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