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고객이 신탁회사에 투자판단을 위임할 수 없는 법적 제약이 국내 신탁시장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임형준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14일 '장기 자산관리수단으로서 신탁의 발전을 위한 과제' 보고서에서 신탁회사에 투자판단 위임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탁은 사적 계약을 통해 고객의 수요와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자산을 운용하는 상품으로 우리나라는 금전신탁을 중심으로 2010년 이후부터 크게 성장했다.

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신탁시장은 금전신탁 391조 원, 재산신탁 350조 원등 750조 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재산신탁의 경우 대부분인 법인의 대출용 담보를 위한 부동산담보신탁이거나 채권 추심을 위한 금전채권신탁이 차지하고 있다.

391조 원의 금전신탁도 퇴직연금신탁이 99조 원, 일회성 상품인 주가연계신탁과 정기예금형 신탁이 각각 35조 원과 80조 원을 차지하고 있다.

신탁시장의 상당 부분이 기관투자자와 법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데다, 개인 고객 대상 신탁업도 신탁의 본질과 달리 금융상품을 일회성을 판매하는 수단으로 변질한 셈이다.

임 연구위원은 이러한 현실의 문제점을 신탁회사에 투자일임을 허용하지 않는 제도적 한계에서 찾았다.

금융자산을 관리하는 신탁으로 허용된 특정금전신탁은 신탁회사가 자산을 매매할 때마다 고객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돼 있다.

장기간 고객 자산을 관리하다 보면 자산 매매가 발생하는데, 그때마다 고객의 서명이 필요해 금융회사는 물론 고객 모두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임 연구위원은 "믿고 맡긴다는 뜻에서 출발한 신탁의 본질을 고려하면 고객이 계약 때문에 신탁업자에게 투자판단을 위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이나 영국, 호주, 일본 등의 금융 선진국들도 신탁 계약에서 투자판단 위임을 제한하지 않는다.

그는 "자산관리에 대한 판단을 위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후견인 신탁 등 장기 신탁 계약이 가능하다"며 "자산 내역을 변경할 때 이를 즉시 통지하게 함으로써 고객 보호의 규율도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다양한 자산 배분과 위험관리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신탁회사가 고객의 재산을 공동기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변액보험이나 퇴직연금에서는 금융회사가 채권이나 부동산투자용 기금을 모아 투자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신탁에는 이를 제한하고 있어서다.

이미 미국과 호주, 일본 등은 여러 신탁계좌의 재산을 공동기금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임 연구위원은 "공동기금을 통해 개별적으로 투자하기 힘든 해외자산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고객 자금을 출금할 때도 신탁사의 유동성을 강화할 수 있다"며 "여러 만기와 등급의 채권, 다양한 부동산 등 자산의 다양성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그간 개인 고객 영업은 장기적인 자문, 관리서비스가 아닌 펀드나 특정금전신탁, ELS 등을 판매하는 데 치중됐다"며 "신탁의 실효성이 강화돼야 금융회사도 그간의 관행을 벗어나는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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