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운 형편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한 A박사는 자신이 보유한 내국법인의 주식(시가 총액 180억원 규모)의 90%를 모교인 B대학교에 기부했다. 다만, '대학교'에는 법인격이 없다는 점을 고려, 별도로 설립된 장학재단이 이 주식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장학사업을 수행키로 했다.

그러나 과세 당국이 이 장학재단이 증여를 받은 주식에 대해 140억원의 증여세를 부과하자 장학사업은 결국 좌초 위기에 놓였다.

과세 당국은 출연자인 A박사 자신이 '재산을 출연해 설립한 비영리법인'에 주식을 증여했다는 이유로 증여세를 부과한 것이다.

세법상 공익법인에 증여된 재산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증여의 대상이 주식인 경우에는 편법 경영권 승계 및 경제력 집중 등을 막기 위해 예외적으로 과세하고 있다.

예컨대, 기업 오너가 공익법인을 만들어 자신의 기업 주식을 증여하고 자신의 자녀를 그 공익법인의 대표로 임명하는 경우 등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다.

다만, 성실공익법인이 출연자와 특수관계에 있지 않은 내국법인의 주식을 취득하는 경우에 한해서는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예외의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이번 케이스의 과세 적법성 여부는 결국 해당 장학재단이 A박사가 '재산을 출연해 설립한 비영리법인'에 해당하는 지가 핵심이다.

이에 대해 '세금 폭탄'을 맞게 된 장학재단은 "민법상 재단법인의 설립이란 재산의 출연 이외에 정관의 작성 등과 같은 설립 행위까지 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A박사는 이러한 설립 행위에 관여하지 않았으므로 장학재단을 설립했다고 할 수 없다"며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과세 당국은 "세법상 재단법인의 설립은 재산의 출연만으로 충분하다"고 반박했다.

이러한 양측의 주장에 대해 1심과 2심의 결론은 엇갈렸다. 하지만 소송이 제기된 후 8년만인 지난 4월 20일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A박사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세법상 출연자가 해당 공익법인을 '재산을 출연해 설립했다'고 보기 위해서는 출연자가 단순히 재산을 출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정관의 작성이나 이사의 선임과 같은 설립 행위에 실질적으로 관여했어야 한다"고 봤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의미는 세법상 과세 요건이 '재산 출연' 외에도 '설립'을 추가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이상, 과세 당국이 '재산 출연'만으로 과세 요건이 충족됐다고 볼 수 없다는 조세법률주의의 원칙을 재확인했다는 점에 있다.

공익법인 기부자의 실질적 지배력이나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증여세를 과세하던 그간의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는 얘기다.

아울러 설립 행위의 개념을 정관 작성 이외에도 '이사의 선임'과 같은 행위로 확대했다는 점에서 균형을 맞췄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대 사회에서 거액의 기부를 함에 있어 주식은 빠질 수 없는 대상임에도 그간 획일적인 세법상의 제한만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다만,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통제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순수한 목적의 주식 기부는 오히려 장려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표상하고 있는 주식은 여전히 다른 기부 수단에 비해 법적 제한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기부 전 단계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자칫 순수한 선의가 오히려 불이익으로 되돌아오지 않도록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법무법인 충정 조상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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