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미 기자 = 도시바의 메모리사업부 매각 절차가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도시바의 합작 파트너사인 웨스턴디지털(WD)이 자사의 동의 없이 메모리사업을 매각하는 것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결국 국제분쟁 절차에까지 돌입했기 때문이다.

도시바 메모리 인수에 강한 의지를 보였던 SK하이닉스, 대만의 홍하이그룹(폭스콘) 등은 한발 물러나 사태의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됐다.

15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웨스턴디지털은 국제상공회의소(ICC) 산하의 국제중재법원(ICA)에 도시바가 메모리사업부 매각을 합작사이자 웨스턴디지털의 자회사인 샌디스크의 동의 없이 추진하는 것을 중단해달라는 중재 절차에 착수했다.

웨스턴디지털 역시 다른 인수후보군과 함께 예비입찰에 참여했으나 폭스콘이나 브로드컴 등이 써낸 인수금액보다 더 적은 금액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메모리를 인수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도시바는 합작 계약에 따라 누구도 도시바 메모리의 지배지분 변화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웨스턴디지털 역시 도시바와 합작사업 중이었던 샌디스크를 인수할 때 도시바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도시바의 이런 주장과 달리 웨스턴디지털은 도시바가 합작 계약을 위반했다는 입장이다.

스티브 밀리건 웨스턴디지털 최고경영자(CEO)는 "도시바는 샌디스크의 동의 없이 합작사의 지분을 새 사업부로 이전하거나 매각하는 것이 금지된다"고 성명을 통해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번 문제를 해결하려고 중재절차에 돌입한 것은 우리의 첫 번째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다른 해결 노력이 성공적이지 못했고 이 때문에 법적 조치가 필요한 조치라고 본다"고 말했다.

중재 절차는 수개월 이상 걸릴 가능성이 있어, 메모리사업부 매각을 통해 당장 자금 수혈이 필요한 도시바에는 비상이 걸린 셈이다.

도시바 메모리사업부 매각 입찰에 지난 3월 말 10여개 업체가 참여했다. 도시바는 4~5곳을 후보로 압축한 데 이어 오는 19일 2차 입찰을 마감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자산실사가 늦어지고 웨스턴디지털의 중재요청까지 나옴에 따라 2차 입찰이 이달 하순 이후로까지도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

도시바 메모리사업부의 가치는 2조엔(약 20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미국의 사모펀드인 KKR(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의 일본의 관민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 일본정책투자은행이 공동으로 구성한 컨소시엄 이른바 '미일연합'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로 꼽힌다.

일본 정부가 자국의 핵심 반도체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도시바 인수와 관련해 "깜짝 놀랄 뉴스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해 SK하이닉스의 도시바메모리 인수에 자신감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박 사장은 SK하이닉스 등기이사에 올라 있으며 지난달 말 최태원 SK그룹이 인수전을 살피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동행한 바 있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를 인수하지 못하더라도 '미일연합'이 인수하면 SK하이닉스에는 별다른 악재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토러스투자증권은 미일연합이 도시바 메모리의 최대 지분을 인수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폭스콘의 30조원 인수와 같은 시나리오와 비교했을 때 도시바 입장에서는 충분한 '수혈'이 아닌 '응급처치' 수준의 현금 유입에 불과하다"면서 "따라서 도시바의 낸드 경쟁력 강화까지 이어지기는 어렵고 이에 따라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호재라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sm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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