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연합인포맥스) 김대도 기자 = 문재인 정부 첫 경제팀 인선에서 기획ㆍ예산라인 중심으로 옛 경제기획원(EPB. Economic Planning Board) 출신들이 약진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참여정부에서 전성기를 누린 이후 약 10년 만이다. 반면 옛 재무부(MOF. Ministry of Finance) 출신 인사(모피아)들은 EPB에 비해 다소 주춤한 양상이다.

2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행시 26회)와 홍남기 국무조정실장(행시 29회)은 모두 EPB 출신이다.

EPB는 노무현 정부 시절 전성기를 맞았다. 노 전 대통령 재임 기간 6명의 청와대 정책실장 가운데 박봉흠ㆍ권오규ㆍ변양균 등 3명을 EPB 출신이 등용됐고, 모피아는 한 명도 없었다.

태생적으로 기획과 예산, 대외경제 등에 장점을 지난 EPB 출신들은 당시 최초의 국가 중장기 전략을 담은 '비전 2030' 등의 미래 청사진들을 만들어내며 승승장구했다.

특히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한솥밥을 먹었던 EPB 인사들이 문재인 정부 요직에 포진돼 눈길을 끈다.

김동연 부총리 내정자는 지난 2006년 변양균 당시 기획예산처 장관 아래서 '비전 2030' 실무를 총괄하는 전략기획관이었고, 홍남기 국조실장은 변 전 정책실장 시절 정책보좌관을 했다.

7급 출신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이정도 총무비서관은 변 전 실장을 기획예산처 차관 시절부터 비서 등으로 가까이서 보좌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과 변양균 정책실장이 청와대에서 같이 업무를 하면서, 인사 추천에도 자문할 만큼 신뢰가 쌓였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일자리 창출과 소득주도 성장의 중장기 로드맵을 짜고, 확장적 재정정책도 펴나가겠다는 새 정부의 의중이 기획ㆍ예산에 강점을 가진 EPB 출신의 중용 배경이 된 것으로 해석됐다.

김동연 내정자는 전일 기자들과 만나 "이제까지 정책의 효과성과 전달체계에 있어 재정정책보다 통화정책이 유리했다는 것이 고전적 관점이었다면 지금은 관점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며 "여러 정황을 볼 때 재정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EPB는 1948년 정부수립 시점의 기획처를 모태로 1961년에 재무부 예산국, 부흥부 등과 합쳐진 경제부처다.

1994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둘러싼 대립으로 재무부와 다툼을 벌이다가 재정경제원으로 통합되기까지 33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총괄했다.

국가 발전을 위한 종합계획과 예산 편성ㆍ집행, 물가안정정책, 대외경제정책을 맡은 경제컨트롤 타워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모피아가 득세했다. 강만수ㆍ윤증현ㆍ박재완 등 기획재정부 장관 3명이 모두 모피아였다.

모피아는 금융과 세제, 국고를 맡았던 재무부 출신 관료로, 경제 안정과 위기 대응에 탁월한 강점을 보여왔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EPB 출신들이 다시 등용됐다. 하지만 기획ㆍ예산 라인보다는 대외경제조정실 출신이 주를 이뤘다. 조원동 전 경제수석과 현오석 전 부총리,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 등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 첫 경제팀에 기획ㆍ예산라인 EPB 출신이 중용된 것을 고려하면 모피아의 후퇴 현상은 박근혜 정부에 이어 이번 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경제팀을 이끌 후보군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재무부 출신 김진표 전 부총리와 이용섭 전 의원이 국정기획자문위원장과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각각 자리하면서 EPB가 재무부에 판정승을 거뒀다는 평가도 나온다.

앞으로 남아있는 청와대 경제수석과 경제보좌관을 비롯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의 경제팀 요직의 인선에도 관심이 쏠린다.

특히 관가에서는 이번 주 예정된 정부부처의 차관급 인사를 주목하고 있다. 재정확장에 방점을 찍을 수 있는 기재부 2차관 역할이 커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dd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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